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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Aug 08. 2024

사모곡

배롱나무


 “여기 화단 봐라! 이 꽃이 백일홍이야.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예쁘지?”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고 백일홍은 저 나무에 핀 붉은색 꽃인데.”     


 두 사람이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옥신각신한다. 사실은 다 맞는 말이다. 화단에 핀 백일홍은 1년생 국화과 초본식물이고, 나무에 피어있는 백일홍은 목본식물인 배롱나무꽃이다. 둘 다 개화기가 겹치고, 오래 피어있다. 특히 배롱나무꽃은 진분홍 조각구름이 나무에 얹혀있는 모습으로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져 꽃잎이 펼쳐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라는 뜻으로 식물의 꽃은 10일 정도 피었다가 진다. 배롱나무는 이를 무색하게 한다. ‘십일홍’이 아니라 ‘백일홍’이니 말이다. 여름에 개화를 시작해 가을까지 피어있다.

 한 송이 꽃이 오래 피는 건 아니다. 순서대로 피면서 간격을 못 느껴 착각하는 것이다. 동시에 개화하는 다른 식물과 달리 배롱나무 꽃봉오리들은 순서를 기다린다. 하나가 피고, 얼마 후 지고 나면 다른 꽃봉오리에서 개화한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개화를 이어가는 강인함이 오래전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어머니는 평소 꽃에 대한 애착이 크셨다. 유난히 붉은 꽃을 좋아하셔서 대가족이 사는 아파트 내부에 정성으로 꽃을 가꾸셨다. 집 밖 화단에서도 붉은 제라늄, 영산홍, 명자나무꽃, 빨간 장미에 심취하셨으며 한여름에는 백일홍이 단연 어머니의 관심사였다.

 구순(九旬)의 어머니는 한여름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백일홍이 핀 배롱나무 그늘에 자주 머무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에 취해계신 덕분에 찾아 나선 아들과 옛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어머니는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애들 어릴 때 피부가 이렇게 매끈했었는데….”     


 배롱나무는 나무껍질도 눈길을 끈다. 매우 얇고 투명하며 반질반질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매끄럽다. 어머니는 그것을 느끼시며 5남매를 키우시던 시절을 회상하셨다.     


 세월의 흐름은 꿈같다. 추억이 담긴 시간은 더욱 그렇다. 언제부턴가 백일홍은 피었지만,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백일홍의 화사함이 그리움으로 변했다. 꽃을 바라보는 시간만큼 그리움도 길어졌다. 자식의 안타까움을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가 베푸신 은혜가 그리움이다. 하늘에서도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신다.

 100일이 지나면 꽃은 다 지겠지만 내년에도 핀다는 희망이 있어 괜찮다. 그때까지 그리움을 쌓아두었다가 백일홍이 필 때 팝콘처럼 터트려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배롱나무는 부처꽃과() 낙엽 활엽 소교목이다. 꽃이 다 지면 벼가 익는다고 쌀나무, 껍질을 긁으면 잎이 움직여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린다. 백일홍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배기롱이다. 여기서 가 탈락하여 배롱나무가 탄생했다.

 예부터 청렴을 상징하는 나무로 선비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21세기에 들어와서 가로수와 조경수로 식재가 확대되었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분포 범위도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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