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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Aug 15. 2024

화촉을 밝히다

자작나무


 “올림픽, 결혼식, 생일파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은 ‘불 붙이고 시작한다’이다. 불이 붙는 순간도 올림픽은 ‘성화 점화’고 결혼식은 ‘화촉을 밝힌다’라고 한다. 여기서 ‘화촉’은 한 나무를 지목한다.     

 어린 시절 나크레파스로 나무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무를 그릴 때는 초록색인 잎과 달리 몸통인 줄기는 고동색으로 칠했다. 나무색이 곧 고동색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줄기를 고동색으로 칠할 수 없는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껍질(수피)이 매끈하고 윤이 나면서 순백(純白)이 돋보이는 자작나무이다.

     

 다음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백석’ 시인이 지은 ‘백화(白樺)’라는 시(詩)의 일부이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중략)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1930년대 함경도를 여행하며 작가가 바라본 풍경을 직관적으로 나타냈다. 백화란 흰 백(白), 자작나무 화(樺)로 흰색 자작나무이다. 북한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했다고 시인은 전하고 있다.

 혹한을 견뎌야 하는 자작나무 껍질에는 수분조절을 위해 천연왁스인 밀납 성분이 들어있다. 양초가 있기 전에 기름종이 같은 그 껍질을 말아서 만든 초가 화촉이다.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에 쓰였으며 성스러운 결혼식에도 활용했다. 부부의 첫출발은 그렇게 화촉을 밝히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한지역에는 자작나무의 자생지가 없어 일부 고산지대에나 볼 수 있던 나무였다. 시베리아나 백두산이 배경으로 나온 옛날 영화의 장면에서 보았지만, 그때는 흰색 수피를 상상할 수 없었다. 눈이 많이 내려 모든 게 하얗게 덮인 것으로 알았다.

 수피가 흰색인 이유는 불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법이다. 눈 덮인 광야에 내리쬐는 햇빛의 반사로부터 화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작나무는 눈 많은 지역에 적합한 나무로 진화되었다.      


 수십 년간 심은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이국적인 분위기로 명소가 되었다. 나무가 하늘로 솟아올라 경관의 신비로움까지 전해준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전국에 새로 조성하는 공원 등에 조경수로 심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근 눈이 잘 오지 않고 쌓여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지구 온난화까지 더해 자작나무가 정착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세월이 흐르면 흰색 수피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사라져 다른 색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마치 오래 살던 고향을 떠나 전혀 다른 공간으로 옮겨온 느낌이라 할까? 설원 숲의 귀족나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만나는 자작나무가 손님처럼 느껴져 다소 안쓰럽게 보인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과() 낙엽 활엽 교목이다. 나무껍질이 불에 탈 때 자작자작나는 소리로 순우리말 이름이 생겨났고 꽃말은 '임 기다림'이다. 영어로는 ‘Birch’인데 글 쓰는 나무껍질이란 뜻이며 수피는 썩지 않고 잘 보존된.

 시베리아에서는 암 치료에 효능 있는 차가버섯이 기생한다. 또한 천연감미료 자일리톨이 함유되어 미()적인 효과 외에 건강을 지켜주는 나무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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