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람 Oct 17. 2024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모과나무


“쿵”     


 창문 너머에서 들린 굉음에 모두 깜짝 놀랐다. 사무실 뒤쪽 공터에 세워둔 승용차 위에 다 익은 진노랑 모과가 떨어졌다. 단단한 모과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얌전히 놓여 있고 지붕만 움푹 들어갔다. 울상이 된 차주는 그곳에 주차한 자신을 탓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답게 열매가 풍성하다. 모과도 잎과 섞여 있다가 낙엽이 지면 노랗게 익어 눈에 띈다. 익기 전에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열매를 지탱하는 자루도 짧다. 큰 열매가 답답하게 가지에 바싹 붙어 있다.      


 모과는 예로부터 ‘의외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겉보기와 다르다는 뜻으로 알면 알수록 여러 번 놀라게 한다. 첫째는 모과꽃의 아름다움이다. ‘둘째, 꽃은 예쁜데 열매가 못생겼다.’ ‘셋째, 열매는 못생겼으나 향기가 좋다.’ ‘넷째, 향기는 좋은데 맛이 없다.’ ‘다섯째, 맛은 없어도 약재로 유용하다.’ 등이다.

 모과는 이렇게 여러 특징이 있으나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가지로 고정된다. 열매가 못생겼다는 것과 향기가 좋다는 사실이다. 봄에 피는 연분홍빛 꽃이나 해가 거듭될수록 짙어지는 얼룩무늬 수피는 그다음 관심이다.

 모과 이야기는 그래서 못생겼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이 그 시작이다. 얼굴뿐 아니라 물건을 비유할 때도 ‘못생김’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못생김은 억울하게도 ‘쓸모없다’가 되기도 한다. 제법 탐스럽게 익어도 먹거리에 목말랐던 조상들을 실망하게 했기 때문이다.

 ‘탱자는 매끈해도 거지의 손에서 놀고, 모과는 얽어도 선비의 손에서 논다’라는 속담도 있다. 모과의 수준을 탱자보다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천연두의 흉터인 ‘얽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모과의 반전 매력은 역시 향기다. ‘선비의 손에서 논다’라는 말도 향기를 암시하며 그 향기는 ‘그윽함’이다. 몸속 깊이 느껴져 아늑하고 고요함이 느껴지는 내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한다.     

 2002년 고인(故人)이 된 희극배우 이주일씨는 모과를 닮은 인물이었다. 숱한 유행어로 ‘코미디 황제’라는 별칭을 얻은 그가 처음에 터트린 회심의 한마디가 있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이다.

스스로 못생김을 내세우고 뭔가 보여주겠다는 어설픈 언행으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그러면서 사람의 참모습이 얼굴이 아니고 마음이라는 철학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대중도 그의 생김새보다는 재능을 보았다.

     

 모과나무의 꽃말을 처음 정한 사람도 겉모습을 초월하는 향기를 강조했다. 그래서 꽃말이 ‘평범’과 ‘정열’이다. 얼핏 보면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평범’해 보이는 모과가 한 해 동안 주어진 에너지를 집중하여 진한 ‘정열’의 향기를 만들어냈다. 모과 향기는 열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꽃, 잎, 줄기 등 나무 어디를 만져도 손으로 전해진다. 봄, 여름, 가을 3계절 내내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모과나무는 상록 활엽 교목이다. 장미과()이며 앙증맞은 꽃이 피어 화려한 벚나무와도 가깝다. 열매가 단단해 동물에게 먹혀서 번식하지 않고, 굴러다니다가 썩어서 씨앗을 퍼뜨린다. 열매의 모양, 크기, 색깔이 참외와 비슷해 나무에서 열리는 참외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전 01화 갈색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