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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Oct 10. 2024

갈색 추억

플라타너스(Platanus)


 “선생님. 갈색이 어떤 색인가요?”     


 어느 가을날 초등생이던 나는 갈색이 어떤 색인지 물었다. 선생님은 대답 대신 교실 밖 단풍 든 플라타너스를 가리켰다. ‘갈색’ 이미지가 추억으로 저장된 순간이었다.

 12색 크레파스로 색을 배울 때 아이의 능력으로는 어른의 색깔 표현이 너무 어려웠다. 금색, 살색, 하늘색…. 등은 겉으로 드러나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갈색, 남색, 소라색…. 등은 글자를 보고서는 알 수 없는 색이었다.     


 나무를 자칭할 때는 흔히 ‘00나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외래종인 ‘플라타너스’나 ‘포플러’는 원어로 불리는 것이 독특하다. 그나마 포플러는 ‘미루나무’라는 이름도 같이 불린다. 플라타너스도 ‘양버즘나무’라는 이름이 있으나 거의 불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나 비타민같이 우리 말처럼 자리 잡았다.

 플라타너스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학교나 거리에서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또한 김소월 시인의 ‘진달레꽃’처럼 한국인의 정서에 어울리는 시(詩)가 미친 영향도 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후략)」     


 중등 교과서에 실린 김현승 시인의 시 ‘플라타너스’이다. 의인법을 사용해 나무를 예찬했다. 1953년 작품인 것으로 보아 제법 오랜시간을 우리나라 사람과 함께했다. 길가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받았던 느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플라타너스는 생장이 빨라 하늘에 닿을 듯이 자란다. 그래서 운동장 둘레에 심어져 넓은 그늘을 제공했다. 또한 마로니에, 개잎갈나무와 함께 세계 3대 가로수에 해당하여 아름다운 플라타너스 길로 전국에 명소가 된 곳도 있다.

 플라타너스는 큰 잎에 먼지가 흡착되는 공기정화 나무다. 은행나무와 함께 대표 가로수였던 시절이 있었으나 오늘날은 상황이 변했다. 시야를 가리고 거리의 배수구를 막아 안전을 위협한다. 언제부턴가 아담한 벚나무, 이팝나무, 배롱나무 등에 자리를 내주고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추세이다.      


 초겨울의 거리에서 플라타너스를 만났다. 안타깝게도 수형 차이가 극과 극이다. 활동기는 다른 나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함의 강점을 뽐낸다. 갈색 낙엽이 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에 방울 모양의 작은 열매만 매달려 있다. 이 나무가 맞나 싶을 만큼 초라해진다.

 겨울은 더 심하다. 빨리 자란다는 이유로 원줄기만 남기고 모두 가지치기 당해 털 빠진 총채 모양이다. 수피도 흉물스럽게 군데군데 벗겨있어 거리를 음산하게 한다.

 플라타너스는 이렇게 맘대로 자랄 수 없는 박해를 받는다. 그래도 기다리면 희망이 있어 위안이 된다. 새봄이 오면 놀라운 생장력으로 본래 모습을 찾아 당당하게 버텨낼 것이다. 다시 갈색이 될 때까지….     


 플라타너스는 버즘나무과() 낙엽 활엽 교목이다. 버즘은 버짐의 옛말로 껍질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얼굴의 버짐 같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 잎과 열매 모양이 조금 다른 유사 종도 플라타너스로 불리며 넓다라는 뜻이 담겼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를 만든 나무로 서양에서도 유서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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