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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Oct 24. 2024

마지막 잎새

담쟁이덩굴


 낙엽(落葉)은 나무 대부분이 생존을 위해 거쳐야 하는 가을 의식이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려면 잎을 모두 떨구어야 한다. 만약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학작품 속의 ‘마지막 잎새’는 예외였다.

 ‘마지막 잎새’는 미국 작가 오 헨리(O. Henry)의 단편소설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값진 희생이 있었고 한 생명이 소생한 이야기이다.      


 폐렴으로 죽어가던 젊은 화가는 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에 자신의 운명을 결부시켰다. 아래층의 무명 화가는 그를 살리기 위해 악천후에도 창문 너머 담벼락에 마지막 잎새를 그리고 생을 마감했다. 반전이 돋보인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나뭇잎은 담을 타고 자라는 나무였기에 가능했다. 이 나무가 바로 담쟁이덩굴이다.

 풀처럼 보이지만 담쟁이덩굴은 나무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줄기가 굵어지고 단단해지며 생존 방식은 다른 나무와 구분되는 덩굴식물이다. 스스로 몸을 지탱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아껴서 본능에 충실하다. 덩굴식물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며 자기만의 강점을 갖게 되었다.

 같은 덩굴식물인 칡이나 등나무는 다른 식물의 줄기를 감고 오른다. 담쟁이덩굴은 다른 방식이다. 거미손의 역할을 하는 흡착근을 사용해 암벽 등반하듯 나무나 벽을 짚고 오른다. 그래서 다른 식물의 생육에는 영향력이 적다. 의지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방향이든 햇빛이 있는 쪽으로 줄기를 뻗는다.

 지금도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도 동네 담벼락은 담쟁이덩굴에 덮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장난기가 발동하면 벽에 붙은 덩굴을 잡아당겼다. ‘뚜두둑’ 하며 벽에서 뜯기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담쟁이덩굴의 생명력은 대단했다. 뜯어낸 줄기를 바닥에 어지럽게 던져 놓고 며칠 지나면 다시 벽을 끈기있게 기어오른다. 움직이는 식물이었다.

 번식력도 뛰어나며 무엇보다 유대감도 있다. 담쟁이덩굴잎이 서로 연대하여 같이 기어오른다. 그리고 아무리 넓은 벽이라도 줄기와 잎으로 다 덮어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기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록 위기지만 처한 상황이 바닥이라 더 이상 내려갈 게 없다는 위로가 담겨 있다. 또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소설 속 마지막 잎새도 어두운 절망으로 다가왔지만, 인간애가 발휘되며 밝은 희망이 되었다.

 담쟁이덩굴의 생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옆으로 자라다가 벽에 막히면 멈추지 않는다. 수직방향으로 치고 오르며 그늘을 벗어난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희망 전해주는 나무이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 낙엽 활엽수이다. (+쟁이+덩굴)은 담을 잘 타는 덩굴나무라는 뜻이다. 담에 붙어 햇빛을 차단하는 커튼 역할로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초록이 전하는 심리적 안정감은 보너스다.

 담쟁이덩굴의 영어명 ‘Ivy’는 미국 동부의 대학 캠퍼스를 덮고 있어 학문상징이. 명문대학군인 아이비리그라는 명칭으로 이어져 교육의 장과 자연의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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