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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채식주의자

모기

by 서람


초등학교 2학년 때 유쾌한 담임 선생님이 전해준 수수께끼가 있다. 학생들을 어리벙벙하게 만든 그 질문은 오랜 시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새장에는 누가 살까요?” “새입니다.”

“그러면 닭장에는 누가 살까요?” “닭이요.”

“좋아요. 그렇다면 모기장에는 누가 살까요?”

“... 모기??”


모기는 인간에게 해악이 가장 큰 곤충이다. 피를 빨아먹는 물리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병원체를 전파해 질병을 일으키는 간접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간을 위협하는 동물 1위로 모기를 꼽았다. 감염병으로 매년 수십만 명이 사망한다.

여름밤 무더위 속에서 잠들 때쯤 귓가를 맴도는 소리 ‘앵~앵~.’ 그 순간 밤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으로 변한다. 그리고 기어이 피를 봐야 끝나는 혈투는 모기와의 오랜 악연이었다.

오죽하면 무신론자들이 모기의 존재가 신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모기의 공격을 받으면 시퍼런 칼이라도 빼 들고 싶은 증오감에 사무친다.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냉정함을 권면하지만, 이 속담이 왜 생겼는지 심정이 이해된다.


모기는 이처럼 저주스러운 존재지만 의외성이 있다. 사실은 채식주의자다. 꿀이나 식물즙을 빨아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꽃가루를 옮기며 수정을 돕는 좋은 일도 한다. 다만 인간을 분노시키는 흡혈의 주범은 산란기를 앞둔 암컷이다. 알에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식성을 바꾼 게 아니라, 번식을 위해 전략적 식단 조정을 선택한 것이다.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무리를 이탈한 어린 초식동물을 하이에나 떼가 잡아먹는 모습이다. 불쌍하고 잔인하지만, 나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에나는 악마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굶주린 새끼가 있습니다.”


자연에서 동물의 상호작용은 선과 악이 아니라 이렇게 생존의 관점이다. 모기의 못마땅한 행태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불편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모기도, 인간도 누군가의 몸을 빌려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단지 모기는 만물의 영장에게 악행한 대가로, 최악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모기 덕분에 한 번 더 인간의 본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모기는 인간의 피를, 인간은 지구의 다른 자원을 빨아먹는다. 그런 점에서 인간도 만만치 않다.


모기는 파리목(目) 곤충이다. ‘24절기 중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으나,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무색해졌다. 더 일찍 출몰하고 늦게까지 기승을 부린다. 모기 개체수는 온도와 강수량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습하면 개체수가 많이 늘고 가뭄이 심하면 확 줄어든다.

흥미로운 점은 유독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다. 모기는 후각이 발달해서 흡혈 대상을 냄새로 찾는다. 호흡으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를 맡거나 열이 많은 사람을 선호한다,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이 그래서 잘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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