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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반딧불이

by 서람


♪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나는 반딧불’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다. 처음에는 멜로디만 따라 흘려들었지만, 어느 날 이 네 소절이 가슴을 울리며 지난 세월을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올리게 했다.


어릴 적 나도 분명 별이 될 거라 믿었다. 언젠가는 세상의 중심에서 눈부시게 빛날 줄 알았다. 그러나 꿈은 점점 희미해졌고, 일상에 묻혀버렸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문득 물었다. ‘반짝이던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소중한 존재이며, 내 자리에서 소박한 빛을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아. 나대로 빛나고 있어’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마도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용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반딧불이는 1~2cm 남짓한 작은 곤충이다. 그 몸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불빛은 아이에게는 신비의 세계, 어른은 동심을 자극하는 감성의 불씨다. 그런데 왜 그들은 빛을 낼까? 깜빡이는 그 불빛은 짝을 찾는 신호다. 종마다 깜빡이는 속도와 시간 등 리듬이 달라, 그들만의 소통방식으로 서로를 알아본다. 반딧불이 빛은 과학이자 사랑의 언어이다.

어릴 적 공부를 게을리하면 어른들에게 ‘형설지공(螢雪之功)’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가난한 소년이 반딧불 빛 아래에서 글을 읽고 입신양명했다는 이야기이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져, 그때는 반딧불이가 왠지 아름답지는 않았다.

그래도 반딧불이는 그 당시에 여름밤 마법의 세계를 펼친 장난감이었다. 비록 몸에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방어물질을 분비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손으로 낚아채 꼬리를 떼어 얼굴에 문지르며 귀신 놀이하던 추억도 있다. 이제는 문명의 인공조명이 반딧불이의 신호를 방해한다. 그래서 예전엔 흔했지만, 지금은 산골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존재이다.


낮에도 하늘에 별은 존재한다. 다만 밝은 햇빛이 그 빛을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 별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지금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빛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딧불이처럼, 누군가의 어둠을 살짝 밝혀주는 존재라면, 별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작지만 의미 있는 빛, 그게 어쩌면 삶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목(目)에 속한다. 낮 동안에 축축한 배설물 밑에 있어 개똥벌레라고 부르며 전국에 서식한다. 환경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종이며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가 풍부한 무주가 국내 최대 서식처다.

반딧불이의 빛 생성은 화학에너지가 빛에너지로 전환하는 시스템이다. 특이한 건 생성 과정에 열 발생이 거의 없는 고효율이라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반딧불이를 나타내는 한자 ‘형(螢)’은 벌레(虫) 위에 두 개의 불(火)이 깜박이는 형태이다. 불빛이 깜박거려서 독서를 위해 조명의 지속 효과를 내려면 수백 마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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