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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과 허세 사이

사마귀

by 서람


여름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을 기대하고 차 문을 여는 순간,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 지붕 한가운데 사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늘 그 자세다. 차가 달리면 바로 날아가겠지 싶어 그대로 출발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는데, 도착한 곳에서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미끄러운데도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버텼을까?

혹시나 몸에 이상이 있나 싶어 조심스레 막대기로 건드려 보았다. 순간, 당황스럽게도 훌쩍 숲으로 날아갔다. 저렇게 잘 날면서 왜 진작에 가지 않았을까. 차가 타고 싶었나, 아니면 잠시 동행할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내 차를 선택해 준 고마움과 함께 자연의 수수께끼에 마음이 설렜다.


곤충 중에서 사마귀는 가장 독특하다. 사람의 그림자만 느껴도 숨기 바쁜 다른 곤충들과 달리 오히려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치켜들고 머리를 세워 ‘한판 붙자’라는 자세를 취한다. 대표적인 육식성이며 살아있는 곤충을 잡아서 씹어먹는다. 숲의 상식을 깨고 자기보다 몸집이 큰 대상도 잡는 포식자이다.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멈춰 있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에서 당랑권(螳螂拳)이라는 무술 권법이 생겼다. 그만큼 동작이 민첩하고 강력하다.

그런데 이 당당한 곤충에게도 서글픈 비밀이 있다. 짝짓기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이다. 열애의 끝이 비정한 결말이다. 잔인하지만 이 희생으로 암컷은 더 튼튼한 알을 낳을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수컷 또한 자기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함이다.

또 다른 비밀은 기생충 중 무시무시한 ‘연가시’와의 악연이다. 연가시는 먹이사슬을 따라 사마귀의 몸속에 숨어들어 번식기가 되면 뇌를 조종해 물가로 유인한다. 그리고 익사시키며 몸을 찢고 나온다. 이처럼 사마귀는 수컷의 비극이나 연가시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운명을 안고 산다. 강하지만, 완벽하진 않은 존재이다.


사마귀의 본성은 도망보다는 맞섬에 있다. 그런데 그 당당함은 용기라기보다 겁쟁이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허세에 가깝다. 사마귀는 매복형 사냥꾼이라 빠르게 도망치는 데 능숙하지 않다. 움직임보다 버티기가 강점이라 ‘나를 건들면 재미없다’라는 허세가 담긴 행동이다. 살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다.

사마귀의 허세 속엔 묘한 게 있다. 두려움에도 저항하려는 본능이다. 인간도 때때로 사마귀처럼 산다. 마음은 떨리지만 괜찮은 척하고, 무섭지만 강한 척하며 삶 앞에서 자신을 지킨다.


그날 내 차의 지붕에 앉아 있던 사마귀도 그랬을 것이다. 동행한 나에게, ‘너도 나처럼 살고 있지’라고 묻지 않았을까? 그렇다. 인간도 마음속에 사마귀 한 마리쯤은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야 바람 부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사마귀는 사마귀목(目)이다. 이름의 유래는 한자어 ‘당랑(螳螂)’을 한글로 발음한 것이다. 피부질환 ‘사마귀’와 다르다. 이는 살갗에 생기는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혹이며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어릴 때 곤충 사마귀를 회피한 이유가 물리면 그 혹이 생긴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었다. 곤충 사마귀와 피부질환 사마귀는 전혀 관련 없다.

메뚜기류와 같은 공간에 살며 강력한 천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에게는 해충을 잡아주는 익충이고,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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