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대학 시절, 별명이 ‘메뚜기’인 친구가 있었다. 사연이 특별했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자리를 맡으려 애쓰지 않았다. 열람실에 들어가면 먼저 휙 둘러보고, 임자가 있으나 부재중인 자리에 앉아 공부한다. 임자가 나타나면 다른 빈자리로 이동했다. 온종일 옮겨 다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긴장도 되고, 졸지 않아 집중이 더 잘된다고 했다. 그렇게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그 모습이 메뚜기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국민 MC 유재석’의 별명도 메뚜기다. 그의 인기만큼이나 이 말에는 친근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메뚜기는 단순한 곤충을 넘어 톡톡 튀는 사람, 자유로운 영혼 등 의인화의 상징이 되었다.
대부분의 곤충이 혐오 대상이지만 메뚜기는 예외다. 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임에도 사람들은 그 사실에 둔한 편이다. 친근한 별명도 한몫했지만, 그 실마리는 오래전 농경문화에 있었다. 논밭이 생활의 터전이었던 시절, 메뚜기는 그곳에서 만난 익숙한 곤충이었다. 바퀴벌레처럼 불쑥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 숨지 않고 드러나는 존재이며 직접적인 위협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식량으로도 활용했다. 성경에도 메뚜기를 음식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메뚜기를 한마디로 나타내는 말이 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속담이다.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활발히 뛰다가 찬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생태를 빗대었다. 또한 한때 잘나가는 존재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하찮은 존재의 짧은 전성기를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짧은 계절의 허무를 뜻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순간을 향한 강렬한 집중을 나타낼 수 있다.
삶은 늘 평탄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 철이 오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메뚜기의 전성기가 있듯, 인간도 자기만의 ‘한 철’이 있다. 그것은 젊음일 수도, 우연히 찾아온 행운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육체의 전성기를, 누군가는 마음의 전성기를 맞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느냐가 아니라, 그 한 철을 어떻게 살아냈느냐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은 단순한 속담을 넘어,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라는 권고이다. 또한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삶의 명령이다. 어쩌면 메뚜기를 통해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나면 메뚜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래도 한 철이었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그들은 주저 없이 뛰었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때가 오면, 내 마음속의 메뚜기도 뛴다. 그 순간이 길지 않아도 상관없다. 한 번의 도약이, 긴 생을 빛나게 할 수 있으니.
메뚜기목(目)은 식성에 따라 초식과 육식(잡식)으로 나눈다. 여치, 귀뚜라미류 같은 잡식과 달리 메뚜기라 하면 초식을 의미하며 흔히 논밭에 있는 벼메뚜기를 나타낸다. 메뚜기 중에는 길가나 민가 근처에 서식하는 작은 메뚜기류를 다시 구분하여 콩중이, 팥중이라는 민속적인 이름을 가진 종도 있다.
대량 발생 시 큰 피해를 주지만 농약에 약해 방제가 쉽다. 반대로 메뚜기가 나오는 논은 친환경 농사를 한다는 증거가 되어 청정 마케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