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기후 변화가 여름은 점점 길게 하고, 잠 못 드는 열대야도 늘렸다. 그래도 8월 말, 한낮의 열기가 여름의 꼬리를 붙잡아도 저녁 바람에 팔뚝의 서늘함이 스며든다. 바로 그때 풀숲에서 귀를 잡아끄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맑지만 소리가 가늘어 화려하지는 않다. 그래도 그 단조로운 울림이 주는 마음의 긁힘은 제법 낭만적이다.
24절기 중 양력 8월 23일경을 처서(處暑)라 한다. ‘더위가 멈춘다’라는 뜻이다. 처서를 감각적으로 나타낸 속담이 있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이다. 계절 변화를 일상에서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귀뚜라미는 이처럼 가을의 전령이다. 단지 그들의 존재는 시각적으로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철저한 야행성이라 우연히 마주치지 않는다면 울음소리라는 청각적인 만남이 훨씬 자연스럽다.
동물이 특정 시기에 내는 울음소리는 공통점이 있다. 봄의 개구리 합창, 한여름 숲을 달구는 매미의 울음이나 날개를 비벼 수만 번 이어지는 풀벌레 소리는 모두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간절한 부름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암컷을 유인하는 수컷의 구애 행위이면서 서늘한 바람에 실려와 사람들에게 새로운 계절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는 온도 차이에 따라 사계절이 있지만, 그 기준이 되는 기온의 변곡점은 두 번 있다. 봄이 오면서 기온이 점점 올라가고, 가을이 되면서부터 내려간다. 봄은 모든 일의 시작을 의미하고, 가을은 정리가 이루어지는 계절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이제는 거둘 때가 되었다’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것은 농사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듯하다.
곤충 귀뚜라미는 수명도 길지 않지만, 그 짧은 생을 온전히 울음으로 채운다.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기에 더욱 간절하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거대한 업적이 아니더라도, 작은 고백을 반복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남길 수 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듣기 어렵지만, 가을밤 풀숲에 가면 들을 수 있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어젯밤에도 풀숲으로 나가 보았다. 밝은 데에서는 들리지 않아 어두운 쪽으로 옮겨보았다. 소리가 들리는 데 보이지 않는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조용해졌다. 제자리로 되돌아오니 다시 들렸다. 미물도 위험이 감지되니 몸을 사린다.
가을은 소리로 온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는 그 소리. 올가을에도 풀숲의 작은 고백에 귀 기울이며, 내 삶의 거둠과 성찰의 시간을 맞이하려고 한다.
귀뚜라미는 메뚜기목(目)으로 몸은 어두운 색깔이 대부분이다. 실제 울음소리가 담긴 순우리말 이름으로 서식지는 다양하다. 사체나 음식 찌꺼기 등 가리지 않는 잡식성으로 바퀴벌레와 함께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온순한 편이지만 세력권 다툼이 심해 중국에서는 이런 습성을 활용해 싸움 대회가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리를 통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심리치유 애완곤충’으로, 그리고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량자원으로 이용한다. 마음의 위로와 미래의 식탁까지 바꾸어 놓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