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지난 5개월 동안 ‘곤충도 고민이 많다’라는 제목으로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곤충을 탐색하고 그 이야기를 펼쳐보았다. 곤충(昆蟲)은 본래 ‘많은 무리의 벌레들’을 뜻하지만, 인간에게 곤충은 단순한 벌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냈던 세대, 숲을 놀이터 삼았던 이들에게 곤충은 친구이자 놀이의 대상이었다. 잠자리나 메뚜기를 잡아 손에 쥐고, 매미를 향해 나무를 흔들던 모습은 그 자체로 추억이다. 하지만 모든 곤충이 똑같은 대접을 받은 건 아니다. 호감과 혐오, 친근함과 두려움, 유익함과 해로움 사이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곤충을 평가하고 구분해 왔다.
그 기준은 곤충의 외형과 행동,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졌다. 귀엽고 조화로운 형태의 곤충은 친근하지만, 낯설고 비정형적인 모습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곤충은 긍정적으로, 불편이나 피해를 주는 곤충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등산을 즐기는 한 친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느 날 밤, 그의 집안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어왔다. 곤충이라면 질색하여 예전 같으면 놀라 소리 지르고 때려잡았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낯선 공간에 불시착한 손님을 귀하게 맞이했고, 오히려 귀뚜라미가 더 놀랐을 거라며 살며시 밖으로 내보냈다. 숲에서 경험이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작은 생명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키워준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벼룩시장(Flea market)이 활성화되면 벼룩의 부정적 이미지는 조금 희석될까? 반대로 인간에게 친근하고 유익했던 곤충이 어느 날 감염병을 매개한다면,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곤충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이렇게 사회적 가치 판단과 인간 내면의 심리 구조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곤충은 작다. 그래서 그 세계는 미시적이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질서와 본능의 충실함이 깃들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사회 구조와 달리, 곤충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이다. 그렇기에 곤충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곤충도 고민이 많다’라는 제목 속에는 사실 인간의 고민이 겹쳐 있다. 곤충의 미시 세계를 바라보며 인간의 삶을 비추어 보았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하찮아 보이는 존재가 전하는 메시지는 전혀 미미하지 않다.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곤충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인간 자신을 향한 물음이 된다. 거대한 것, 고귀한 것만이 통찰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작고 미미해 보이는 존재 속 진실을 읽어낼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삶의 본질에 다가선다. 작은 곤충을 대하는 태도는 곧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곤충도 고민이 많다’라는 연재의 끝에서 이렇게 되뇌어 본다.
“곤충도 고민이 많다는데, 나라고 다를 게 있을까?”
※ 브런치스토리 네 번째 연재를 마치면서 다음 글을 고민했다. 늘 글을 쓰면서 스펀지처럼 가볍게 쓰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펀지에 욕심이 스며들어 무거워진다. 작가로서 한계점이다. 그래도 잠깐의 충전 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동식물을 대상으로 탈색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삶의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듯하다. 가볍지만 울림이 있는 다음 도전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