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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Mar 07. 2022

달의 포착

일상의 순간들 (3)



퇴근길, 집앞 골목에서 가장 나를 맞이해주는 건 영롱하게 떠오른 달이다. 

미소 띤 입꼬리를 닮아 환하게 비추는 것이 나도 모르게 따라 웃음이 나왔다.


이 모습이 아쉬워, 스마트폰을 켰다.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한 장 찍어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일까. 

두 눈으로 담아낸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선명함은 온데간데 없고 암흑 속에 길을 잃은 번져버린 미확인 비행물체나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기능 세부 설정을 통해 어느 정도 형체는 잡아보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한 그것과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다.


간혹 SNS나 전문 사진작가들이 달 사진은 아주 선명하게 담아내곤 한다. 어떤 것은 절구 찧는 달나라 토끼를 눈앞에 둔 것처럼 가까운 것들도 보일 정도니까. 다소 거친 피부와 닮은 달의 표면을 보고 싶은 건 아니다. 

두 눈에 담긴 적당히 빛나고 고운 모양새만 담아내고 싶었건만.


사진 찍는 기술이 턱 없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으나 한참을 촬영 버튼만 반복하다가 멈추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처음 봤을 때처럼 마음 놓고 한 번 크게 웃었다.


그래, 꼭 기계 한 구석에 고스란이 담아내려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가장 솔직하고 확실한 눈을 두고 어째서 또 다른 눈으로 애써 선명하게 담아내려 아둥바둥할 필요도 있을까.


지금에 가장 충실하자. 포착은 카메라가 아니라, 두 눈으로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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