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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Mar 15. 2022

당연히 돌아가야 할 사람들은 없다

일상의 순간들(9)

조금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멀리 떨어진 나는 당장 달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돌아가신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라 장례도 따로 치르지 않는다는 이모의 담담한 목소리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흔여덟이면... 호상이지. 잘 되신 거야."

소위 살만큼 사셨다고 했지만 그 의미의 무게가 새삼 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살만큼 산다는 건, 도대체 무엇이 기준인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여느 청년 못지 않게 나와 함께 발맞춰 걸으셨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너 엄마도 이젠 가셔야 하는데. 너랑 아버지도 할만큼 충분히 했잖아."

이모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에게로 넘어갔다. 어머니는 십수년 가까이 침상에 누워만 계신 상태다. 어떤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내리지 못 한 채, 그저 아버지의 극진한 간호로 함께 살아오고 있다. 남들이 내년이면... 내년이면 했던 게 횟수로 10년째니. 이모도 미안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말을 하셨으리라.


더 이상의 통화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존재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길 재촉하는 이야긴 어떤 형태로든 감당할 수 없으니. 할만큼이나 했을까, 자문해보지만 딱히 답을 내릴 수도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함께하길 약속만 하고 못 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쏟아지건만. 가장 가까운 어머니의 부재를 어떻게 재촉하란 말인가. 기적이 있다면 돌아가기 대신 원래 상태로 돌아오길 바랄 뿐인데.


부담과 효율을 앞세워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고 외면하고 싶지 않다.


세상 무엇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 지금의 순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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