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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Dec 13. 2018

소설, 제주를 만나다_1화_충효박씨이야기

소설로 풀어 본 제주의 역사와 신화, 전설들


얼마 전, 대사헌 영감이 나를 은밀히 따로 부르셨다.

조정에 등청한 지, 이제 달포를 넘겼을까. 딱히 영감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등청에서 거의 마주친 적도 없었던 터. 갑작스러운 독대에 어지간히 당황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영감께서 나를 보자마자 내린 하명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자네가 제주에 다녀와야겠네.”

제주라니, 저 멀리 남도지방 바다를 한참 건너야 있는 섬이 아니던가. 존재만 알았을 뿐, 단 한 번도 가볼 생각조차 없었던 곳이었다. 특별히 내가 가야 하는 이유를 여쭈었더니.

“어려운 일은 아닐세. 가서 보고 느낀 그대로, 기별을 보내주시게.”

가서 할 일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제주에는 이미 목사를 파견하지 않았던가. 그를 따르는 관리들도 제법 되었던 터. 굳이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자네가 제주에 있는 동안은 우리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일세. 제주 목사 쪽에는 이를 전혀 몰라야 할 것이야.”

영감의 의중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결국 제주에 발이 닿았다. 바다와 오름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미처 누리기도 전에 비보부터 듣고 말았다. 전하께서 승하하셨다는 것. 제주목 관리가 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백성들은 모두 바닥에 엎디어 곡을 하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자가 있었다.

“주상 전하, 주상 전하! 소신이 충을 못 다하였사옵니다.”

다른 관리나 백성들은 곡을 내는 게, 다소 형식적이었으나. 그자만큼은 달랐다. 온 땅이 울리도록 구슬프게 울고 또 우는 게 아니었던가. 마침 내 옆에 사람이 있었다. 저이가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더니. 신엄 마을에 사는 박계곤이라고 했다. 제주목에 말단 관리로 있는데. 글재주가 좋고 효심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평소 나랏일 자체에 성실하여 전하를 향한 충심은 말로 다 할 것이 없었더라고. 하루에 한두 번씩은 한양을 향해 절까지도 올렸다니. 조정에 있는 나조차도 놀랄 따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이를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신엄 마을에 발길이 닿았을 때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하얀 상복 차림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사람들과 얘기를 조금씩 나누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지나가던 내게도 말을 걸지 않던가.

“주상 전하의 은혜를 어찌 가만두고 볼 수 있소이까, 같이 한양에 가지 않으시겠소?”

그는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다음날, 여기저기서 모인 그가 모아 온 사람들은 족히 서른 명 정도는 되었다. 정말 한양에 다녀오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제주목에 있는 다른 관리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까닭이 있느냐고 묻자.

“소신, 생전에 주상전하의 용안을 직접 뵈온 건 아니오만. 신하이자 백성된 도리로써,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소이까.”

단호한 그의 말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제주목사의 환송까지 받으며 그와 함께하는 일행은 한양을 떠났다. 얼마 후, 한양과 제주를 오가는 상선을 통해 그의 소식이 전해졌는데. 전하의 능역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동참하였다고 한다. 이에 제주목 관리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은 깊게 감동하여, 그와 일행이 내려올 때 크게 잔치를 벌어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예정된 시일이 한참 지났으나, 그들은 제주로 돌아오지 못 하였다. 몇 차례 상선을 통해 수소문했지만 한양에서 떠난 것 말고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백성들 사이에는 숱한 소문이 나돌았다. 아직 능을 지키고 있다느니부터 시작해서 오다가 왜구에 붙들렸다는 얘기도 있었고. 이를 계기로 조정에 출세를 기다린다는 얘기도 나왔다. 심지어는 능역하러 올라간 자체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죽했으면 제주목사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벌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던가?

그들의 소식은 뜻밖에도 박계관의 부인을 통해 밝혀졌다. 남편이 걱정되어 매일 바닷가를 살펴보던 어느 날, 바다에 나뭇조각 하나가 떠밀려 온 것. 거기에는 빨갛게 그의 글씨가 새겨진 것이었다.

“나라의 안녕과 부모께 못다한 불효를 용서하옵소서”

이에 사람들은 박계곤의 충심이 하늘까지 울렸다며 함께 슬퍼하였다. 목사도 바로 조정에 이 사실을 알렸고, 나 역시도 영감께 상선을 통해 기별로 보냈다. 조정에서는 곧장 사람을 보내어 ‘충효 박씨 정문’을 만들어주었다. 그때쯤 영감께서 따로 내게 기별도 보내었다.

‘제주 백성들의 사정을 좀 더 살펴보시게’

그래, 다음에는 어디를 가야한단 말인지. 제주의 다른 마을로 발길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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