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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Dec 19. 2018

소설, 제주를 만나다_2화_다호마을 베락구룽 이야기

소설로 풀어 본 제주의 역사와 신화, 전설들

영감의 기별을 받자마자 성안에서 나왔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발견하였다. 둥그렇게 빙 둘러서서 땅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니던가.  무슨 연유인지 슬쩍 다가가 물었다.

“아니, 글쎄. 우리 마을에 요상한 짐승이 사는 듯합니다요.”

얼핏 둘러보니, 바닷가를 낀 아주 한적한 마을이었다. 집도 몇 채 되지 않았고.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하늘에 이상한 짐승이 날아다니는 걸 보았다고 한다. 그게 단순히 새라고 보기엔 너무 컸던 터라, 무엇인지 좀처럼 알 도리가 없었다던데…….

 누구도 그 형체를 아주 제시한 본 이가 없었다. 밤낮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친 것도 있었겠지만. 차마 해를 당할까하여 제대로 살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굿이라도 해야겠다며 입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중 유독 내 눈에 밟히는 자가 있었다. 연배가 제법 있어 보이는 사내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어둔 얼굴로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던가. 근거를 확실히 댈 수는 없겠으나 직감상, 저자라면 뭔가 실마리라도 가진 듯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고, 조용히 돌아가던 그를 뒤따랐다.
 “뉘신데 저를 따라오십니까요?”

여태 침묵을 지키던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진 얼굴, 찬바람이 옆구리를 에는데도 흐르는 식은땀, 초점이 맞지 않은 눈동자까지. 어디 하나 수상쩍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허나, 내 정체를 밝히고 당장 알고 있는 걸 고하라고 다그칠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정처 없이 전국팔도를 두루두루 살펴보는 방랑객이라 먼저 인사하였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좀처럼 바짝 세운 날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애써 웃음부터 호탕하게 지어보았다. 걷다보니 목이 마른데, 집에서 물 한 잔 얻어먹을 수 없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고개를 내젓는 그의 얼굴이었다. 다시 제 갈길 가려던 그를 이대로 두고볼 수는 없었다. 얼른 뒤따라가서 옆으로 나란히 걸었다. 대신 시원하게 한 잔 할 수 있는 곳을 아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고개와 손짓으로 내가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성안으로 가는 길에 작은 주막이 있다는 것. 길을 잘 모르겠다는 핑계로 주막까지 그와 동행하였다. 그 답례로 마주 앉아 술 한잔을 함께하길 권했다. 다행히 사양하지 않았고, 어느새 술상에는 술병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쪽도 참 궁금한 거 많아서 좋겠시다~”

“세상을 떠돌면서 이것저것 주워듣고 보는 게 제 낙이라오.”

취기가 올라오니 그와 얘기도 점점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엔 그냥저냥 제주 목사와 관리들 험담만 늘어놓던 그가 갑자기 자신의 아들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던가.

“아무래도 우리 아들 녀석이 이상하오.”

올해 열일곱이 되는 사내라던데. 어느 날부터 심부름을 보내면 금방 다녀온 게 의아하다고 하였다. 분명 심부름 내용을 확인해보면 정말 거기에 충실하게 다녀온 건 맞긴 맞았다던데.

때마침 마을에 날아다니는 짐승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행여나 정말 소문의 주인공은 아닐까 하여 노심초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와 더불어 정말 아들 녀석이 그런지 안 그런지 알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지 그것도 최근 큰 고민이라 하였다.

 사람이 날개로 날아다닌다, 글쎄. 나도 썩 믿을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대신 그가 고민하는 부분에 해결책은 번뜩 떠오르긴 했다. 정녕 소문처럼 날아다닌다고 하면 신발에 흙이 제대로 묻지 않을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제주에는 흙과 돌이 많으니 조금만 걸어도 분명 흔적이 남았을 터. 기왕 확실히 확인하려면 비가 내릴 때는 어떤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보았다. 마침 또 비가 좀 내리기 시작하던 터였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먼. 참, 고맙소이다. 술값은 내가 치르리다.”

그런데 막상 그를 집에 보내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썩 개운치는 않았다. 설령 아들 녀석이 날개가 있다면 어떡할 셈인가. 괜한 얘기를 한 건 아닌지 밤늦게까지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거의 새벽에 가까울 때였을까, 갑자기 바깥에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니던가. 그 소리가 심상찮아서 바깥에 나가 보았으나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날이 밝았을 때, 다시 마을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지난밤 벼락이 떨어졌는데 거기에 못이 하나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바로 전날 나와 술상을 나누던 그의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베락구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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