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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Dec 26. 2018

소설, 제주를 만나다_3화_기건 목사의 편지

소설로 풀어 본 제주의 역사와 신화, 전설들

  

“거기 잠깐 멈춰보시오.”

성안에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육지에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갑자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일단 따라갔는데, 느닷없이 목관아로 향하지 않던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던 이는 다름 아닌 제주목사였다.

“잘 오셨소이다, 이제야 얼굴을 보는구려.”

내려올 때 이쪽으로는 전혀 기별을 하지 않았던 터라, 순간 당혹감이 몰려왔다. 얼떨결에 집무실까지 따라가서 마주 앉게 되었다. 먼저 전하의 안부를 묻고, 한양과 다른 지방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상당히 궁금해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머나먼 섬까지 내려왔으니 어찌 심신이 답답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찻잔을 비우는 그의 안색은 단순히 제주에 내려온 답답함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땅은 참 보면 볼수록 묘하단 말이오.”

무슨 얘긴가, 자세히 들어보니. 제주에는 죽은자를 땅에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것도 들어보다가 찻잔을 놓칠 뻔하였다. 장례를 치른 시체는 개천이나 바닷가에 그냥 던져버린다는 것.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만약 일흔까지 살아있다면, 자식들이 한라산 정상에다가 모셔둔다는 게 아니던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부모를 앉혀놓으면 그날로 신선이 되어 올라간다는 풍습이 있다던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소이다.”
 대충 들었던 나도 그랬겠지만, 그는 여기 있으면서도 전해 듣기만 하니 오죽 답답했을꼬.

마침 다음날에 이방 하나가 자신의 아버지를 한라산으로 모셔간다고 했다. 친히 따라갈까, 했으나 본래 자식이 아니고서야 그러기도 쉽지 않았던 터라. 내게 좋은 방안이 없겠노라며, 반쯤 비운 찻잔을 다시 채웠다.

선뜻 어떤 좋은 방안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설마 진짜 신선이 있겠나,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라면 어떤 게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에 찻잔만 대고 하릴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그는 대뜸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글자 대신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가 담겨있었다.      

다음날, 그는 이방을 친히 불렀다. 옥황상제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아버님께 전달해줄 수 있느냐며 어제 내게 보여줬던 그 편지를 넘겨주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하루를 더 지나서도 알 수 없었다. 나도 어쩌다가 목관아에 며칠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른 곳을 살펴보아야겠다고 그리 일렀건만, 목사가 며칠만 편히 쉬라며 놓아주질 않으니, 이것참.

그동안 목관아에 드나드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나 같이 그를 칭송하는 내용들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전복이었다. 제주에서는 진상품으로 전복을 올린다고 하던데, 이게 다 제주 백성들이 직접 거친 바다를 오가며 딴 것들이었다.

 대체로 전복은 거둔 그대로 보내진 않고 자기들끼리 나눠먹기 마련인데. 지금 이 목사는 많이 달랐다. 백성들이 바다에서 모진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본인부터 전복을 아예 밥상으로 올리지 말라 일렀다. 그 영향으로 관아에서 누구도 선뜻 전복으로 어떻게 할 생각도 못 하니,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마음이 열렸던 게 아닐까?

이 외에도 제주 백성들을 위한 그의 고민들이 구석구석 스며있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장례 문화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치밀하게 살피는 모습이, 과연 전하가 이런 모습을 귀하게 여긴 걸까? 하루이틀 목관아에서 그의 행동을 살펴보니 그랬다.


또 하루가 흐르자, 목사가 친히 나를 또 불렀다. 대뜸 한라산 정상이 궁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초행으로는 쉬이 갈 수 없는 곳이라, 마음만 품었을 뿐 선뜻 갈 엄두조차 못 내긴 했다. 하루 쉬었던 이방이 돌아오자마자 같이 한라산으로 올라가자고 권했다. 명분은 자신이 옥황상제에게 쓴 편지가 잘 전달되었나 궁금했다는 것.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답신은 직접 가서 받아야겠다고 하니, 누구 하나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거의 한나절을 꼬박 넘겨서 도착한 한라산 정상에는 난데없이 아주 커다란 뱀이 죽은 채 쓰러져 있었다. 동행한 이방은 아버지를 모셨던 장소라며 얼굴이 허옇게 질리고 말았다. 목사는 함께 올라온 군사들에게 일러 뱀의 배를 가르게 하였다. 그 속에는 이방의 아버지 시체가 고스란히 있었으니.

“옥황상제께 올린 답이 이렇게 왔다니.”

이방에게 전달해준 편지 속 허연 가루는 다름 아닌 독약이었다. 이날부터 일흔 살이 넘은 백성들을 한라산에 모셔두는 건, 완전히 금지시키기로 하였다. 그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조용히 감탄이 나왔다. 앞으로 더 큰일을 감당할 사람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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