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었지만, 지금은 잔잔한
노래처럼

by 최영남

하산운동은 과거 ‘아래뫼루니’라 불렸으며, 이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또는 ‘산골 마을’을 뜻한다. 결국 ‘운중동’이라는 이름은 국사봉 아래 위치해 앞뒤 산에 늘 구름이 많이 낀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1992년, 市 청소과로 전보되면서 하산운동 쓰레기매립장 관리가 주 업무가 되었다. 이 매립장은 4만 4,873㎡(약 13,570평) 규모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사용되었다. 매일 차로 약 40분이 걸리는 매립장을 방문해 점검하는 것이 일상 업무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청소 차량이 매립장에 들어와 쓰레기를 쏟아놓으면, 포클레인과 불도저를 이용한 복토 작업이 뒤따라야 했다. 곧바로 작업이 진행되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약 20명의 넝마주이가 상주하며 고철 등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골라낸 뒤, 2~3일이 지나서야 복토 작업이 가능했다.


그들은 매립지 안에 천막을 치고 거주했다. 천막 주변에는 파이프를 박아 관을 통해 나오는 메탄가스에 불을 붙여 24시간 내내 불을 피워놓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계장이나 선임들은 그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힘 있는 윗선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있었고, 조폭과 연계되었다는 소문도 무성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녀 모두 씻지 못한 채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었고,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반면, 깔끔한 차림에 중형차를 몰고 드나드는 관리자가 가끔 눈에 띄었다. 아무튼, 그들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넝마주이’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재활용의 원조이자 생존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낡은 옷, 헌 종이, 병 등 단순히 폐품을 줍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빈곤과 도시화, 그리고 사회적 낙인을 함께 짊어진 인물들이었다.


복토 작업이 지연되면서 파리와 까마귀가 대거 번식했다. 인근에는 남서울 골프장이 있었는데, 주말마다 시장이 지인들과 골프장을 이용할 때면 지시에 따라 불시에 소독 차량을 동원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침출수 처리장 관리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미화원 3명이 3교대로 근무하며 처리장을 관리했는데, 하루 처리용량은 50㎥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제 측정해 보니 300㎥ 이상이 배출되고 있었다. 시커먼 침출수가 처리장을 거쳐 그대로 방류되고 있었다. 이 문제를 계장과 선임에게 보고했지만, 그들은 “절대 밖으로 알려지면 큰일 난다”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가끔 도에서 채수하러 온다고 연락이 오면, 현장 근무 미화원에게 연락해 약품을 어떻게 투입했는지 조율했고, 분석 결과는 늘 기준치 이내로 나왔다. 지금도 그 결과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물을 논에 끌어들이면 영양분이 과다해 벼가 웃자랐다. 몇 차례 잘라줘야 겨우 추수할 수 있었고, 수확량은 크게 줄었다. 한 농민이 문제를 제기하며 찾아왔지만, 계장과 선임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쉬쉬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판교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분이 큰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 믿으며,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있다.


침출수가 흘러 나간 하천에는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번민의 시간이었다. 적발이라도 되면 무단 방류로 법적책임이 따를 수 있었다. 때마침 분당 지역 하수처리 문제로 협의차 방문한 하수관리계장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흔쾌히 해결 방안 논의에 동의했다. 함께 현장을 확인한 뒤, 하천을 따라 관로를 매설해 하수처리

장까지 이송하기로 했다. 하천을 따라 묻으면 토지 보상 문제도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작은 키에 자상했던 그분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경기도로 전입한 직후, 새롭게 조성된 성남시 금곡동 매립지에서 준공 후 침출수 문제가 언론에 터지며 이슈화되었고, 나와 함께 일했던 과장과 계장 등은 중징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90년대 초반, 환경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 나에게는 매일 매일이 고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한겨울 속삭이던 얼음 같은 기억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의 첫 장이 되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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