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호와 첫 만남

by 최영남


1992년 겨울, 성남시 청소과에서 근무하던 중 경기도 전입 시험 치렀다. 응시 조건은 8급이며, 시 본청 또는 구청 근무 경력 1년 이상이었다.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대강의실에서 필기시험 보고 나오니, 밖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후 면접을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 ‘도보다 시가 승진이 빠르다, 그러니 경기도로 가지 말라’는 의견과 ‘그래도 도가 더 빠르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함께 근무하던 환경직 7급 선임은 결국 ‘시가 빠르다’는 쪽을 선택해 합격하고도 전입을 포기했지만, 결과적으로 승진이 늦어져 5급도 달지 못한 채 퇴직하였다.


1993년 2월 26일, 딸아이가 태어나 휴가 중이던 때 경기도에서 임용장 수여식 참석 통보를 받았다. 3월 2일,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임용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임용장을 받아보니 근무지가 ‘팔당상수원관리사무소’였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기관이었다. 성남시 청소과 사무실에 들러 물어보니, 광주군 퇴촌면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사무소에서 전화가 와서, 출근 시 광주 버스터미널 앞에서 지나가는 코란도 차량 타면 된다며, 수원에서 출발하는 차량 번호를 알려주었다.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모란시장 앞에 도착한 뒤 다시 광주행 버스로 갈아탔다. 터미널 앞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차량이 오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결국 택시를 탔다. 농촌 풍경이 좌우로 펼쳐지는 도로를 따라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광동교를 지나, 퇴촌면 사무소를 끼고 돌아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택시비는 약 3~4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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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넓은 앞마당을 가진 조립식 2층 건물로, 주변은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직 생활 중 가장 오랜 기간 담당하게 된 팔당상수원과의 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사무소는 행정직 소장(5급)을 중심으로 관리계와 보호계 두 개의 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리계는 5명의 직원으로 예산과 회계 등 행정 업무를 담당했고, 현장 관리 업무는 내가 속해 있던 보호 계에서 주로 맡았다. 보호계는 토목 6급, 7급 수산·화공·환경, 8급 토목 등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청원경찰과 선박직, 위생직과 함께 근무했는데, 청원경찰은 육상초소에 배치되어 불법 행위 감시 업무를 수행했고, 선박직은 수상에서 선박을 이용한 감시활동, 부유 쓰레기 수거, 수질오염 사고 대응, 위생직은 호소 주변 육상쓰레기 수거를 담당했다.


팔당호와의 이 숙명적인 만남이 공직 내내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우연히 맡게 된 업무였지만, 마치 오래 기다려온 운명이 내게 다가온 듯한 느낌이었다. 단순한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의 일부로 함께 자라날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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