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by 최영남

발령받은 지 2주 후에 작은 승용차를 뽑았다. 성남 집에서 2번 이상 갈아타는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남한산성을 가로질러 4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8개월간 출퇴근하였는데, 그 시간은 기억이 아니라 마음속에 살아있는 작은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남한산성의 숲과 정겨운 산골 마을 그리고 퇴근 무렵 붉은 노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성은 환상적이고 낭만이었다.

사무실이 있던 광주시 퇴촌면의 모습은 지금과 차이가 크다. 주변에 논과 산이 있고 연립주택 몇 동 이외에 규모가 있는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식당은 분식집, 김밥집, 중국집 각 1곳이 있었고, 밀면집이 있었는데 오리요리 전문점으로 오랫동안 묵은 물김치가 일품이었다. 이외 보신탕집 등 극히 소수의 음식점만이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 오순도순 먹었다. 퇴촌면 농협에서는 가끔 어르신을 위한 경로잔치가 열렸다. 이때 천진암 계곡 전원주택에 살던 코미디언 배삼룡, 남철, 남성남이 무료로 공연하곤 하였다.


가끔 난(蘭)을 좋아하던 소장은 불법으로 설치된 그물에서 압수한 큰 물고기를 비닐에 담아 배삼룡 씨의 집을 찾아가 바꿔 오기도 했다. 도 본청의 담당 국장에게 준다며 몇 마리씩 가져간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귀여리 섬에는 비닐하우스가 많았고, 상추 등 물을 이용한 작물을 주로 재배했다. 봄이면 하우스 주변 밭두렁에 돌미나리가 널려 있어, 한두 시간만 뜯어도 꽤 많은 양을 채취할 수 있었다. 삶은 후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랫동안 그 독특한 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남종면 분원리에는 매운탕, 붕어찜을 파는 음식점들이 다수 들어서 있었고 붕어찜을 먹으러 서울과 분당 등 가까이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이 찾았다. 특히, 여성 몇 명씩 식사 후 고스톱을 치며 즐기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매년 5월 초중순 붕어찜 축제가 열렸다. 붕어찜 요리 저렴하게 제공하기,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마라톤 대회 등으로 구성되었다. 2012년까지 15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음식점이 줄고, 참여 인원이 저조하면서 2013년부터 폐지되었다.

가을에는 점심시간에 앞산에 올라 밤과 도토리를 줍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끔 기능직 직원이 옻나무를 베어 오면 실험실에서 옻닭을 끓여 먹기도 했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사무실 건물 뒤에서 테니스를

치거나 회의실에서 탁구를 즐기기도 했다. 당직을 서게 되면 워낙 외진 곳이라 불을 끄고 있으면 사무실을 찾기 어려웠다. 조사담당관실에서 야간 근무 상황 점검을 나왔지만, 사무실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일도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남양주초소, 양평초소에 무전으로 “오늘 점심시간에 족구 하자”고 약속하고, 선착장에서 순찰선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가 시합했다. 진 팀이 매운탕을 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사무소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독특한 재미였다.

팔당호 변에서는 사무소의 승인을 받아 가끔 TV나 영화 촬영이 이루어졌다. 촬영장이 하게 되면 배우를 보기 위해 얼른 달려가기도 했다. 그 시절에만 볼 수 있었던 추억의 모습이다.

그날의 싱그러웠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매일의 일상까지 아직도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비록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속 그 찰나의 순간들은 여전히 현재처럼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움이란, 결국 잊지 못한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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