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 고통의 시간
팔당상수원관리사무소 보호계장은 출근한 후, 소장실에서 회의를 마친 뒤 직원 차량을 얻어 타고 초소로 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1차, 2차에 이어 수원까지 가서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연락이 두절된다. 소장은 “어디 있는지 연락하라”며 호통치지만,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방법이 없다. 집에 전화해 보면 역시 연락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2~3일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했고, 며칠 뒤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열 살 위의 선임은 업무 시간 중에도 술에 취해 직원들에게 술주정을 하기도 했다. 상식 밖의 일들이 반복되었다. “도에 전입을 온 게 잘못된 선택이었나?” 회의가 들기도 했다. 참으로 희한한 직장이었다.
1993년 10월, 본청 환경관리과로 자리를 옮겼다. 과 전체의 심부름 역할인 서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과장은 40대 초반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그 시절에는 ‘유신 사무관’ 즉, 대위로 전역하면 5급으로 특채되는 제도가 있었다. 군사문화에서 비롯된 인사 제도였다. 과장은 사무실에서 줄담배를 피웠지만, 직원들에
게는 절대 피우지 못하게 했다. 담배는 각 계에서 매달 갹출한 경비로 제공했으며, 서무인 나의 담당업무 중 하나였다.
과장은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열성팬이었다. 월요일은 스포츠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날이지만, 출근하자마자 일요일 신문을 찾곤 했다. 누군가 먼저 가져가 없을 때가 많아, 결국 신문 보급소에 부탁해 월요일 아침마다 수원역 근처까지 뛰어가 신문을 받아왔다. 왕복 15분 거리였지만, 땀 흘리며 다녀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지금은 전자문서로 간단히 접수되지만, 당시에는 문서계에 수시로 들러 문서를 받아와야 했다. 과 대장에 발신자와 발신 번호 등을 기재한 뒤 과장의 선열을 받아야 했고, 공람문서와 협조 문서를 구분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게다가 타자기로 작성해야 하는 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각 과의 담당자 의견을 취합해 타자로 치고, 계장과 과장의 결재를 받아 발송하려면 하루가 모자랐다. 그러다 보면 오타가 생기기도 했는데, 과장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오타 하나라도 발견되면 사무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야단쳤다. 매번 긴장 속에 검토하고 계장도 확인하지만, 과장 앞에서는 늘 오타가 나타났다. 매일매일 극심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당시 컴퓨터가 막 도입되어 과에 세 대가 있었는데, 기능직 여직원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비밀번호를 걸어놓고 자신들만 접근 할 수 있었으며, 과장의 지시나 중요한 서류는 작성해 주었지만, 일반 직원들은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밥 잘 사주고 용돈 좀 챙겨주는 직원의 부탁은 들어줬다. 그 시절엔 그것이 당시에는 작은 권력(?)이었다.
과장이 수도권 매립지 회의 참석을 위해 출장을 가면, 회의 후 저녁 식사와 사우나까지 마치고 밤 9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까지 직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대기해야 했다. 갑자기 하위직들 회식하자고 간다. 이후 노래방 가면 거의 혼자 부른다. 식사비 등 비용은 직원들 1/n이다. 성남에서 출퇴근하던 나는 늦은 시간 집에 가서 주차할 걱정으로 꽉 차 있다.
보건직 7급 직원이 휴가를 내겠다고 결재를 올렸다. 새로 준공된 아파트에 입주해야 했는데, 엘리베이터 사용 문제로 평일에 이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과장은 “일하기 싫어서 평일에 이사한다”라며 호통치고, 억지로 결재를 해주었다. 몇 달 후, 과장 본인이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이사 준비위원회를 만들라고 성화를 부렸다. 결국 평일에 여러 명의 젊은 직원들이 동원되어 과장의 이사를 도왔다. 명백한 내로남불이었지만, 누구도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어느 날 일하고 있는데 다가와서 한마디 한다. “취미가 뭐야”“독서입니다.” 무심코 답한다. 들어보지 못한 외국인 작가와 책 말하며 읽어봤는지 묻는다. 안 읽어 보았다고 하자. 이 책도 못 읽어 본 녀석이 취미가 독서라고 한다고 면박 준다. 할 말이 없다. 그 밖에도 상식 밖의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 겪는 도청 문화는 낯설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마치 거센 바람 속에 놓인 어린나무처럼, 낯선 토양 위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익숙했던 사람들과 환경은 모두 바뀌었고,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고요한 인내 끝에 꽃망울 하나 틔워내듯, 나는 새로운 환경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