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출신 군수와의 인연

by 최영남

공무원 출신 군수와의 인연

새벽 축구장에서 만난 군수, 그리고 첫 인연

발령 다음 날, 긴장과 낯섦 속에 일찍 눈을 떴다. 옥천면 운동장에서 몸을 풀며 뛰고 있는데, 공을 차던 6명 정도의 인원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못 보던 사람인데 누구냐”라고 묻는다. 나는 “새로 부임한 환경사업소장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중 덩치 큰 사람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양서면장 김선교입니다. 매일 아침 축구 함께 합시다.” 그가 훗날 군수 3선,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젊은 군수, 낯선 권력의 등장

그는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군수가 되었고, 본인보다 어린 과장은 도 출신 3명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그와 상대적으로 잘 지낼 수 있었다. 당시 양평군에는 국장이 없었고, 부군수, 과장, 면장 등 5급 이상 간부가 33명이었다. 지역 출신 후배가 군수로 당선되자, 과장들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첫 회식, 그리고 권력의 암투

군수 당선 이후 첫 회식 자리. 분위기가 무르익던 중, 10살

정도 위인 한 면장이 나를 불렀다. ‘건방지게 자기에게 술을 주지 않았다’며, ‘도에서 와서 적당히 일하다가 도망가려 한다’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나가 버렸다. 한 과장이 ‘신경 쓰지 말라’며 위로했지만, 다른 젊은 과장이 그 면장을 두둔하자 그 과장이 술잔을 깨며 격분했다. 회식은 난장판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사람이 4급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고, 그 와중에 내가 끼인 셈이었다. 이것이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단면이었다. 그 면장은 이후 기획실장으로 승진, 오랫동안 양평 공직사회의 실권자로 군림했다.

군수실 Tea Time, 그리고 리더십의 기술

매일 아침, 군수실에서는 Tea Time이 있었다. 다른 과장들은 가끔 참석했지만, 환경, 위생, 하수 등 민원 업무가 많은 환경위생 과장인 나는 거의 매일 배석하였다. 가끔 문제가 생기면, 군수는 비서실장에게 “내일 그 면장, 과장 들어오라고” 호통친다. 막상 다음 날 들어오면 야단은 치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나에게 호통친다. 다른 과장들은 “안 됐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 뒤, 군수는 인터폰으로 나를 호출한다. “미안하다. 내 맘 좀 이해해 달라.” 나이 어린 군수가 선배 공무원들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6개월 후, 권력은 완성된다.

그는 6개월 만에 선배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직급은 낮지만, 정치적 감각과 인간관계의 기술로 조직을 장악해 나갔다. 나는 그 과정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권력의 본질과 리더십의 다양한 얼굴을 배웠다.

지방 권력의 구조, 그리고 외지인의 시선

언론에서는 종종 ‘토착 세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지방행정의 실제 권력 구조를 설명하는 현실적인 용어다. 예전에도 지방에 수령으로 발령받으면 지역 유명 가문이나 유지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돈과 여론을 쥐고 있었고, 군 단위에서는 학연과 지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네트워 크기 작동했다. 어떤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군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선출직인 군수는 영향력 있는 지역유지를 무시할 수 없는 구조다. 그들의 지지 없이는 다음 선거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진 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청탁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특히, 과장 자리는 상사할 수 없도록 치열하다.

외지인의 자유, 그리고 거리 두기의 기술

나는 외지인이었기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군청 간부들은 선거 때마다 눈치를 보고, 줄을 서야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군수는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는 간부를 챙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권력다툼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있다. 갑부로서 균형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는 일이 그 어떤 행정보다도 어려운 과제였다.


체세대 리더과정 교육 기회 주어지다.

2007년 말 행정자치부 연수원 주관의 교육생 신청 공문이 왔다. 경기도 자원이 12명, 시군 자원이 3명 그야말로 바늘구멍 같은 어려운 경우다. 양평군에 1명 배정됐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신청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신청할 수가 없다. 자칫 도 출신 과장이 일하기 싫어서 간다고 할까 봐서다. 2008년 새해 초 출근하자마자 총무과장의 면담 요청이 왔다. 대상이 마땅치 않고 수원이 집이므로 교육 갔으면 한다. 수락하고 나중에 들어보니 대부분 50대 중반의 과장들은 가기를 거부해 결국 나한테까지 기회가 왔다. 덕분에 공직 생활에서 가장 여유롭고 인생의 쉼의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분야의 명강의 많이 듣고, 골프, 탁구, 통기타 등을 배우고, 해외여행 등을 즐겼다. 특히, 중학생이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방행정은 단순한 행정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권력과 신뢰의 복합적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외지인으로서의 거리감은 때로는 자유를, 때로는 고립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정치적 감각과 행정적 균형감각을 동시에 익힐 수 있었다. 이후의 공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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