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났던 경기도지사

by 최영남

내가 만났던 경기도지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지방자치법 제정」 공포·시행 (1949년), 지방의회 구성·출범(1952년), 지방의회 해산, 자치단체장 임명(1961년), 유신헌법, 통일 이뤄질 때까지 구성 아니함(1972년), 공화국 헌법은 지방의회 구성 시기 법률로 정하도록 함(1980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 이를 구체화(1988년), 지방의회 선거(1991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1995년), 주민투표법 제정(2004년),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정(2006년) 등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역사다.

경기도지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임명되거나 선출되었다. 조선시대는 '관찰사'라는 이름으로 임명되었으며, 임기는 6개월~2년 정도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관리들이 경기도장관 또는 경기도지사로 임명되었다.


초대는 구자옥 (1945.8.16 ~ 1945.9.12)이며, 미군정 시기에는 윌리엄 B. 마이어스, 모리스 루트 워크, 찰스 앤더슨 등 미군 장교들이 임명되었다.


이후 수십 명의 관선 도지사가 임명되며, 임기는 수개월 ~ 수년까지 다양하였다. 1995년 이후의 민선 도지사는 경기도지사는 이인제, 임창렬,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이재명, 김동연이다.

이 중 여섯 명의 도지사와 근무했다. 내가 본 이미지를 정리해 봤다. 순전히 개인으로서 본 견해라는 것을 밝혀둔다.


도지사들과의 기억 — 리더십의 다양한 얼굴들


경기도에서의 오랜 공직 생활 동안, 나는 여러 명의 민선 도지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직접적인 업무 접촉이 많았던 경우도 있었고, 행사장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정도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리더십과 정책 방향은 도정의 흐름을 바꾸었고, 나의 기억 속에도 깊이 남아있다.

이인제 도지사(민선 1기)는 하위직급이었던 나와 직접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행사장에서 몇 차례 악수를 나눈 기억이 있다. 작은 키에 친근한 인상, 다부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권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의 시절은 지방자치가 막 시작되던 시기로, 도정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임창렬 도지사(민선 2기)는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답게 행정에 대한 이해와 추진력이 탁월했다. 중앙정부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법령 제정이나 제도 개선을 지방정부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강수계법 제정이다. 확대 간부회의를 중계하던 시절,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간부들이 전날 숫자까지 외워야 할 정도로 긴장하곤 했다. 그는 관리자라기보다는 실무에 가까운 스타일로, 직접 챙기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대단했다. 덕분에 공무원들 꽤 고생했다.

손학규 도지사(민선 3기)는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사무실에 불쑥 들어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소통에 능한 리더였다.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으로 기억되며, 조직 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도 탁월했다. 역시 대권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김문수 도지사(민선 4·5기)는 초기에 팔당 수질관리 정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과거 운동권 시절 부천의 한 공장에서 환경관리인으로 근무한 경험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의 오랜 활동이 그의 정책적 기반이 되었다.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관련 업무를 통합하여 팔당수질개선본부를 신설했고, 상류 주민들과 수시로 만나며 경안천 등 하천 현장을 자주 방문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수질개선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자, 5기에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2025년 대권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남경필 도지사(민선 6기)는 젊은 나이답게 소통에 능한 지도자였다. 작은 차를 타고, 가방을 메고 출근하는 모습은 신선했고, 도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효과적이었다. 팔당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고, 도민들과의 대화 자리에 배석한 적도 있었다. 팔당호 쓰레기 문제와 녹조 방지 대책에 대해 도지사 앞에서 직접 브리핑한 기억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매우 자연스러웠고, 토론도 자유로웠다. 신세대 스타일의 친근한 리더로, 공무원노조나 의회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재명 도지사(민선 7기)와의 기억은 취임한 지 얼마 후, 어느 토요일, 치과 진료를 마친 직후 시작되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본부장, 과장, 비서실 등에서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도지사께서 갑작스럽게 팔당호 현장 방문을 결정하신 것이다. 급히 차를 몰아 밀리는 길을 따라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미 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 시장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도지사께서 나에게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고, “수원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자, “휴일인데 쉬지 뭘 오셨어요”라며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현장의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팔당호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브리핑을 마친 후, 도지사와 비서실장, 선장, 그리고 내가 함께 선박에 올라 약 1시간 30분 동안 팔당호를 순시했다. 수자원 시스템, 요금 체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세심하게 질문하셨고, 시장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미 많은 내용을 알고 계셨다. 이재명 도지사 시절에는 주로 비서실과의 접촉을 통해 업무가 진행되었기에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확대 간부회의는 토론식으로 진행되었고, 의문 사항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곤 하였다. 2025년 역대 경기도지사 중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셨다.

이들 도지사와의 직·간접적 경험은 나에게 행정의 방향성과 리더십의 다양성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도정을 이끌었고, 그 속에서 나는 정책의 흐름과 정치의 온도를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시대를 대표했고, 나는 그 시대의 현장에서 묵묵히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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