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사회에서 피에타(Pieta)는 상실·슬픔·비탄의 가장 명징하고도 성스러운 상징이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땅에 묻기 전 마지막으로 품에 안은 모습은 피에타라는 이름의 거룩한 테마가 되어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뿐만이 아니다. 마리아의 슬픔을 재해석하고 그에 공명하려는 예술가의 계보는 Kle Men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1985년생의 젊은 폴란드 예술가 Klementyna Stępniewska에게까지 이어진다.
2016년, 그녀는 폴란드에서 자신의 비디오 아트 작품 〈피에타〉를 전시했다. 그런데 엄청난 논란이 발생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현수막을 들고 Kle Mens의 피에타 전시관에서 큰 소리로 난동을 부린 것이다. 화가 난 건 남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작품은 폴란드에서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와 Kle Mens의 비디오 아트〈피에타〉의 한 장면
무엇이 사람들을 화나게 한 걸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마찬가지로 Kle Mens의 〈피에타〉에도 두 남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구도와 성별 말고는 많은 것이 다르다.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은 Kle Mens 본인이다. 그는 여성이지만 몸매를 드러나지 않게 하는 옷, 짧은 머리, 눈가 근처의 빨간 분장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젠더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즉 그녀는 퀴어로 인식된다.
그의 무릎 위엔 복싱 팬츠를 입은 남자가 누워 있다. 마리아를 대신하는 파란 옷의 Kle Mens는 무겁고도 진중한 슬픔으로 죽은 남자를 애도한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축 처진 남자의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며 안타까워한다. 배경으로 흐르는 웅장하고 경건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Kle Mens의 슬픔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암시하며 분위기를 서서히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Kle Mens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의 눈빛은 비장함과 분노를 뿜는다.*
내게 Kle Mens의〈피에타〉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징했다. 사랑하는 사람, 친구를 잃은 퀴어도 예수를 떠나보낸 마리아만큼이나 큰 슬픔을 느낀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폴란드 사람들이 분노한 건 이 때문이다. 보수적 가톨릭 사회인 폴란드는 Kle Mens의 작업을 신성모독으로 독해했다. 성경의 가장 슬픈 장면을 성경이 가장 불온하게 여기는 퀴어의 얼굴로 변주했음에 분노한 것이다.
Kle Mens의 개인 홈페이지(http://kle-mens.pl/)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신분열을 앓다가 가톨릭 신도가 되었다. 이로 인해 작가 역시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가톨릭 공동체에서 보냈다. 그는 이제 신을 믿지 않지만, 가톨릭의 주제를 존재론적 관점, 페미니스트 관점, 정치적이고 성적인 맥락에서 변주해왔다고 한다. 〈피에타〉 역시 이런 작업의 일환이었다.
Kle Mens가 〈피에타〉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다. 퀴어들은 에이즈, 자살 등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떠나보냈다. 그때마다 눈물 흘렸고 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피에타〉의 메시지가 급진적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Kle Mens의 〈피에타〉 전시관에서 항의하는 폴란드 남성들. 유튜브 화면 캡처.
퀴어의 죽음은 왜 거룩할 수 없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퀴어의 슬픔은 왜 모두의 슬픔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Kle Mens의 〈피에타〉는 퀴어의 슬픔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를 고발함으로써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퀴어의 슬픔은 예수를 잃은 마리아의 슬픔과 같으며, 예수의 죽음만큼이나 퀴어의 죽음도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Kle Mens의 메시지다(죽은 연인/친구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과 관객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보라!).
그러나 〈피에타〉을 점거한 폴란드 남성들은 이 간절하고 정치적인 물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폭력적 점거로 질문 자체를 부정했다. 그래서 Kle Mens의 〈피에타〉는 다시 한번 묻는다. 나의 죽은 연인/친구를, 우리의 슬픔을 이대로 방치할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