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이는 '거짓말쟁이'다

드라마 〈잔니 베르사체의 죽음: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2018)

by rewr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구의 옛 애인 중 항상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명문대 법대 자퇴생이라고 소개했다. 대학 교육의 답답함을 박차고 나와 요리 공부를 시작했고, 셰프가 되기 위해 지금은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나는 대학에 불만은 가득했으나 때려치울 용기는 없었기에 그의 서사를 근사하다 여겼고, 그와 함께 종종 어울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서사에 조금씩 균열이 일었다. 그가 다녔다는 법대에서 학생회장까지 한 내 또 다른 지인은 같은 학번임에도 그를 모른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말은 점점 늘어갔다. 그가 지난번에 했던 말과는 명백히 다른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당당함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나와 친구가 어색한 표정을 주고받는 순간도 점차 늘어갔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다시 친구를 만났을 때, 그는 애인과 헤어졌다고 했다. 그의 거짓말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어져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려웠다는 이유였다.


드라마 〈잔니 베르사체의 죽음: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를 보고 친구의 옛 애인이 떠올랐던 건 그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앤드루 쿠내넌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앤드루는 모두 거짓말쟁이 게이다. 친구의 옛 애인은 자신의 거짓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내 친구의 곁을 떠났고, 앤드루 쿠내넌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퀴어와 거짓말의 연관성을 생각했다.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대다수 퀴어의 삶은 거짓말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르사체를 쏘기 전의 엔드루 쿠내넌


이 드라마는 앤드루 쿠내넌이 세계적 디자이너 베르사체를 총으로 쏜 실제 사건의 막후를 다룬다. 앤드루는 베르사체를 죽이기 전, 데이비드란 남자도 죽였다. 그 역시 게이였다. 데이비드를 마음에 두었던 앤드루는 그가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알아차리고 떠나려 하자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와 연인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또 다른 친구 제프를 죽인다. 이상한 건 데이비드가 그런 앤드루와 함께 도망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제프를 죽인 건 앤드루이며, 자신은 결백하다는 말을 경찰이 믿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신문 과정에서 경찰이 그에게 줄 모멸감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할지도 알고 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게이라는 이유로 의심받고 조롱당할 것이다. 경찰이 게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건 1990년대를 살아가는 미국의 게이들에겐 상식이었다. 이렇게 데이비드는 불가피하게 거짓말에 연루된다. 그에게 거짓말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게이 존재에 깊게 얽힌 떨쳐낼 수 없는 무언가다.


거짓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앤드루


데이비드가 게이에게 강요된 거짓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타협한다면, 주인공 앤드루는 거짓말이 게이 삶의 조건임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별한’, ‘최고의’ 지위를 갈망하는 앤드루는 변변한 직업도 없지만 늘 화려한 언변으로 노년의 부자 게이 남성을 유혹해 호화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 앤드루는 이들에게서 얻은 자원을 자신의 미래를 기획하는 자원으로 활용한다. 노년의 게이들에게 지급받은 몸값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민 뒤, 젊고 아름다운 게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앤드루가 저지른 다섯 건의 살인사건은 모두 이 과정이 어그러질 때 발생했다. 앤드루가 거짓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챈 그의 연인, 친구들은 앤드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아무도 너의 사랑을 원치 않아(No one wants your love).”, “넌 불행해(You're unhappy).” 앤드루는 자신의 삶이 거짓임을 간파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그 말을 한 친구·연인을 죽인다. 그리고 또 다음 사랑을 찾아 나선다. 드라마에서 자세히 다뤄지진 않지만, 베르사체가 앤드루의 총에 맞은 것도 그가 미래를 함께하자는 앤드루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깔린다.


데이비드를 애틋하게 쳐다보는 앤드루
앤드루가 거짓에 기대어 있음을 폭로하며 비난하는 데이비드


그렇다면, 왜 앤드루는 끝내 들통 날 거짓말을 반복하고, ‘행복한 미래’를 갈망할까? 그가 미래를 부정당한 게이이기 때문이다. 주류문화는 늘 게이를 불행한 현재에 얽매여 있는 존재로 재현해 왔다. ‘문란한’ 게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없고, 영원히 쓸쓸할 수밖에 없으며, 끝내 에이즈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저주. 앤드루의 끝나지 않는 거짓말을 저주를 거스르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성애규범적 사회를 살아가는 게이에겐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는 말 자체가 이미 거짓말이다. 불가능한 대상을 욕망하는 존재의 발화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앤드루는 이 거짓말을 가장 허황되게 부풀린 인물일 뿐, 괴물이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나는 빛나는 눈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집, 가정, 마당, 가족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앤드루에게서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를 향한 간절한 갈망이 살인 광기로 변형된 비극적 인물을 보았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동성애자의 행복을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살인마적 광기 역시 금지한다(이 드라마에서 동성애자의 행복과 살인마적 광기는 모두 처벌 대상이라는 점에서 등가다). 때문에 앤드루가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 ‘행복’의 순간은 그가 마찬가지로 게이 디자이너였던 베르사체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소식이 뉴스에 나가고 나서야 달성된다. 자신이 베르사체 살인범이라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당황하면서도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앤드루는 오명으로나마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지향의 소유자다.


4.png 행복한 얼굴, 과감한 포즈로 졸업사진을 찍는 앤드루


요컨대, 앤드루 쿠내넌은 게이에게 허락되지 않은 행복한 미래를 거짓말로써 돌파하고자 했던 불운한 살인마였다. 반면 베르사체는 앤드루가 꿈꾸는 미래 그 자체였다. 오랜 게이 연인을 지녔고, 부와 명예를 지닌 베르사체는 앤드루가 갈망하던 모든 걸 지녔다(물론 그런 베르사체와 그의 연인도 게이라는 사실로 수모를 당한다). 이렇게 본다면, 앤드루 쿠내넌의 잔니 베르사체 살해는 가장 낮은 곳의 게이가 가장 높은 곳의 게이를 단죄한 사건이기도 하다. 왜 같은 게이인데 너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지에 대한 어긋난 분노의 표출로써 살인이 자행된 것이다. 베르사체가 자신을 거부할 때, 앤드루는 자신의 행복한 미래 지향이 거부당했다고 느꼈고, 그것이 앤드류를 광기에 휩싸이게 한 것이다.


드라마의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끊임없는 거짓말로 미래를 말하는 앤드루의 삶 궤적을 좇는 드라마는 자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앤드루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정 반대다. 그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베르사체 살해는 최후의 파국이었을 뿐, 앤드류의 비극은 아주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여 왔다는 것을. 과거를 거슬러 ‘진실’이 밝혀질수록 행복한 미래를 갈망하는 앤드루의 소망은 '거짓'의 현시가 된다.


그가 꿈꾸는 미래가 불가능한 것이었음이 판명 난 후, 앤드류의 자살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삶을 중단하는 것뿐이었을 테니. 앤드루의 자살은 미래가 불가능해지자 자살로써 현재를 중단해버리는 폭력적 단절이다.


영화 〈리플리〉(1999)가 동성애를 들러리 세운 계급상승 욕망을 다루었다면, 이 드라마는 계급을 들러리 세워 불가능한 미래일 수밖에 없는 동성애 행복의 비극을 부풀린다. 이 드라마처럼 거짓말과 퀴어의 관계를 잘 포착한 작품은 흔치 않은 것 같다. 내 친구의 옛 애인과 앤드루 쿠내넌의 거짓말을 멈추는 방법은 하나다. 그들의 '거짓말'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 그러나 게이들이 거짓말쟁이의 오명을 벗기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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