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Oct 09. 2020

'편안한 게이 정체성'이라는 선언에 관하여

영화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2013)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영화는 미국 성공회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을 다룬다. '최초'의 게이 주교 진 로빈슨과 그의 가족, 친구, 신도들이 교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이야기다. 그들은 동성결혼 법제화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변화의 한복판에서 덤덤히 앞으로 걸어 나간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남편도 사랑하는 진 로빈슨은, 이 두 사랑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그를 흔들림으로부터 지켜준다.



편안한 정체성이라는 이질감


  로빈슨이 교구 신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자신이 게이 주교라는 사실에 위축되지 않는다. 신자들 앞에서도 언제나 부드럽고 당당하다. 로빈슨은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편하게 느끼기 때문에 교구 신자도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대답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게이인 내 주변에는 나를 지지해 주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완벽히 편안한 상태'의 나를 드러낸 적이 없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제 그만해야지' 싶은 암묵적 합의점이 생긴다. 더 이야기하면 서로가 불편할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존중'이란 말로 그 불편함을 덮어 두었다. 그냥, 오랜 시간 내 편에 서줬던 친구들 앞에서도 편안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소리다.


  친구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없다면 진작 무너졌을 테니까. 오히려 내 수치심이 문제다. 온갖 해석을 갖다 붙여도 결국 나는 '더러운 짓'을 일삼는 게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게이 정체성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한다. 수치심으로 인해 남들에게 나를 편안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나와 '같은' 게이인 로빈슨은 어떻게 이 수치심을 넘어선 걸까? 혹시 그에겐 애초에 극복할 수치심 따위가 없었던 건 아닐까? 나와 로빈슨 사이에 존재하는 이 분명한 차이를 인식한 후부터, 로빈슨 주교는 내게 완전한 타인이 되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공통점에서 오는 그와 나 사이의 동질감은 사라졌다. 그의 삶에 몰입하지 못한 채 그저 멀리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동성결혼이 허용되든, 게이가 교황이 되든, 평생 해로할 연인을 만나든, 지금껏 내 몸에 쌓여 온 수치심을 지울 순 없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내가 몸을 섞은 사람 숫자만큼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이전 14화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