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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ug 30. 2021

계급상승 욕망과 동성애 욕망의 '문제적' 결합

영화 〈리플리〉(1999) 리뷰

영화 〈리플리〉 포스터


  가난한 사기꾼 톰 리플리는 선박회사 상속자 디키 그린리프가 될 수 있을까? 즉, 톰은 계급상승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는 영화 〈리플리〉를 추동하는 가장 큰 질문이다. 여기에 계급상승 욕망의 은유로서 동성애 욕망이 결부된다. 이 빼어나고도 문제적인 영화가 앞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따라가 보자.


  피아노 연주를 하며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던 톰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그의 연주를 본 선박회사 재벌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그는 톰이 어딘가에서 빌려온 명문대학의 재킷을 보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는 톰에게 부탁한다. 이탈리아에서 돈만 축내는 망나니 아들 디키 그린리프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 다시 미국으로 데려와 달라고. 다니는 학교가 아님에도 우연히 걸치고 있던 명문대 재킷이 보여주듯, 디키를 찾으러 떠나는 톰의 여정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


톰과 디키 그리고 디키의 연인 마지


  이탈리아에 간 톰은 자기 임무를 금세 잊는다. 디키의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삶에 넋이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톰은 디키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그와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그런데 디키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곁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매정하게 돌변한다.


  그 거리두기의 핵심에는 계급 격차가 있다. 처음에는 톰에게 흥미를 느끼던 디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톰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감지한다. 둘 사이의 계급 격차는 사람의 격(格)으로 확장되어 둘이 함께 어우러질 수 없다는 게 점차 분명해진다.


  디키는 톰에 대한 실증을 점잖고도 냉정하게 표시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디키를 붙잡고 싶은 톰은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결국 디키가 폭언을 쏟아내고, 톰의 열등감은 폭발한다. 톰은 자신(의 계급)이 받은 모욕을 되돌려주는 방법은 극단적 폭력밖에 없다는 듯, 디키를 살해한다. 그리고는 본래 자신의 삶과 죽은 디키의 삶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시작한다. 거짓말이 쌓이고, 거짓말을 지키기 위한 살인은 늘어만 간다. 형편없는 과거를 뒤로하고 상류층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톰의 절박한 폭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톰을 모욕하는 디키


  흥미로운 건 영화가 톰의 욕망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상승하고자 하는 톰의 욕망은 살인과 거짓말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사이코패스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왜 톰이 병적으로 계급상승을 갈망하는지를 질문한다는 점에서는 윤리적이다. 여기에 동성애 욕망이 개입한다.


  톰은 목욕하는 디키에게 자신도 함께 욕조에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다. 디키가 불편한 티를 내며 자리를 피하자 그가 몸을 담갔던 욕조에 들어간다. 기차 안에서는 잠든 디키의 어깨와 가슴에 몸을 기대고 그의 냄새를 맡는다. 디키를 죽인 후에는 피범벅이 된 상태로 그의 시체를 포옹한다. 상류층을 동경하던 톰의 욕망이 어느새 상류층의 삶을 완벽하게 체현한 디키를 향한 욕망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계급상승 욕망을, 이성애중심적 사회는 동성애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살인사건 용의선상에 오른 톰을 신문하는 형사는 톰이 동성애자인지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공적 권력의 상징인 경찰의 질문에는 톰이 ‘불건전한’ 욕망의 소유자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권력의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경찰은 ‘죄’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때문에 톰이 동성애자냐는 그의 질문은 그가 죄인이냐는 질문, 즉 살인자냐는 질문이다.


디키를 바라보는 톰


  경찰은 계급상승과 동성애라는 두 개의 ‘문제적’ 욕망을 지닌 톰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잘 알고 있다. 경찰이 사건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멍청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장면은, 국가가 어떤 욕망을 단속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슬프고도 예리한 장면이기도 하다. 〈리플리〉는 자본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가 결합한 국가에서는 계급상승과 동성애 욕망이 모두 처벌받아야 할 죄임을 섬뜩할 정도로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영화의 마지막, 거침없이 질주하는 톰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이번에는 톰이 거짓말로 경찰의 수사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상류층 동성애자 피터 스미스-킹슬리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피터는 톰의 욕망을 완벽하게 실현시켜 줄 존재였다. 하지만 톰은 끝내 자신의 거짓말에 발목이 잡혀 두 번째 기회마저 날린다. 흔들리는 톰 리플리의 마지막 얼굴은 금지된 욕망을 품은 자의 허망과 혼란 그 자체다. 〈리플리〉는 묻는다. 정해진 자리에 머물 것인가, 선을 넘는 ‘죄인’으로 살 것인가. 오늘도 수많은 톰 리플리들이 이 둘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물론 〈리플리〉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욕망은 계급상승이다. 동성애는 계급상승 욕망을 극화시켜 보여주기 위한 부수적 장치에 불과하다. 즉, 계급상승이 금지된 욕망임을 환기하는 데 동성애를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리플리〉의 계급상승 욕망 재현이 문제적인 동시에 윤리적이었듯이, 〈리플리〉의 동성애 욕망 재현 역시 기묘하게 또 다른 해석의 지점을 마련한다. 〈리플리〉가 동성애를 활용하는 방식은 동성애 욕망이 강력하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성애 욕망이 강력한 힘을 지녔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없다. 금기로서의 동성애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리플리〉는 동성애의 파괴적 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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