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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10. 2020

쇼를 사랑한 남자, 그래서 쇼가 된 남자

영화 <위대한 쇼맨>(2013)

  에이즈로 죽은 예술가 리버라치와 그의 연인 스콧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수의사를 꿈꾸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스콧은 친구를 따라 리버라치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리버라치 역시 스콧을 마음에 들어했기에 그에게 자신의 매니저 일을 제안한다. 리버라치는 돈·명예·예술을 가졌지만 외로웠고, 스콧은 그런 그를 달래주고 싶었다.


  리버라치는 진정한 쇼맨이었다. 무대에서뿐만이 아니다. 그는 가발을 쓰는 대머리지만 스콧에게 이를 비밀로 하라고 태연히 요구한다. 남자를 사랑하고 욕망하는 엄청난 섹스 중독자지만 대중에게 평생의 여인을 기다리는 고독한 순정남으로 비치도록 스스로를 연출한다. 


  스콧은 리버라치의 화려함에 매료되었지만, 언젠가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리버라치의 쇼가 자신의 삶을 앗아간다고 느끼는 순간이 점차 늘어갔기 때문이다. 리버라치는 스콧만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리버라치에게 스콧은 인형이다. 리버라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사줬는데도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는 인형을(스콧을) 이해하지 못한다. 


  리버라치는 스콧에게 자신처럼 성형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태연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수술은 성공했고 리버라치는 크게 만족한다. 스콧은 리버라치의 팬들로부터 그의 아들이냐는 질문까지 받는다. 하지만 정작 스콧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이 낯설다. 스콧은 리버라치가 사랑이라 부르는 '쇼'에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인형과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쇼에 중독됐다. 스콧은 리버라치에게 더 깊게 몰입함으로써 이질감을 쫓아낼 수밖에 없다.


  얄궂게도 스콧이 쇼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리버라치는 스콧과의 쇼를 마무리하려 한다. 리버라치가 스콧을 자신의 인형으로 삼고자 한 이유는 스콧 안에 남아있는 '연출되지 않은 무언가' 때문이었다. 리버라치는 스콧의 내면을 자기 쇼의 재료로 삼는 일에 쾌락을 느꼈고 이를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콧이 리버라치의 삶에 완전히 들어오자 그의 내면에는 새로이 연출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리버라치는 더 이상 스콧을 매력적인 쇼의 게스트로 여기지 않는다.


  리버라치의 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스콧은 자신이 그저 스쳐가는 역할이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스콧은 완전히 좌절한 채 축 처져있다. 그때 전화가 온다. 리버라치의 전화다. 스콧이 보고 싶다고 한다. 다시 만난 리버라치의 얼굴은 처참하다. 그의 얼굴은 죽음을 앞둔 보랏빛이고 그의 머리는 가발을 쓰지 않아 휑하다. 리버라치의 쇼는 끝났다. 그는 에이즈에 걸렸다. 리버라치는 쇼가 끝나는 순간에서야 자기 쇼의 가장 빛나는 게스트가 스콧이었음을 깨달았다. 스콧이야말로 리버라치라는 쇼의 주인공이었다.


  누군가는 통제를 사랑이라 믿는 리버라치를, 자기 삶을 리버라치에게 통째로 갖다 바친 스콧을 욕할 수도 있다. 화려함만 좇는 그들의 삶이 한심하다고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틀렸다. 어차피 우리 모두의 삶은 쇼다. 다만 리버라치의 삶/쇼가 조금 더 극적이었을 뿐이다. 쇼에는 빛나는 순간도 있고 처절한 순간도 있는데 리버라치의 경우는 그저 그 격차가 남들보다 컸을 뿐이다.


  리버라치는 모든 것이 과하다. 동작, 말투, 그리고 성욕까지. 그 과욕은 그를 에이즈라는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파멸의 순간 리버라치가 추억하는 장면은 자기 삶의 가장 과장된 순간들이다. 이 장면들은 그에게 후회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쇼의 하이라이트다. 퀴어의 과장된 삶은 더러움, 슬픔, 집착, 섹스 중독, 정념을 낳지만 이것이야말로 최후의 순간에 리버라치를, 스콧을, 우리를 빛내주는 것들이다. 리버라치는 수치심을 동반하는 퀴어 경험이 어떻게 삶을 빛내주는 자원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이어트 알약으로 몸매를 관리하는 스콧에게서, 축 처진 몸으로 끊임없이 젊은 남자를 탐하는 리버라치에게서, 스콧에게 자신처럼 성형 수술하라고 강요하는 리버라치에게서, 리버라치에게 선물 받은 보석을 몰래 팔아 마약을 구매하는 스콧에게서, 자신은 게이가 아닌 바이라고 강조하는 스콧에게서, 더 과감한 섹스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스콧을 비난하는 리버라치에게서, 리버라치의 새로운 젊은 애인을 보고 질투에 미쳐가는 스콧에게서, 리버라치에게 버림받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때려 부수는 스콧에게서, 젊어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목욕하면서도 가발을 벗지 않는 리버라치에게서, 죽기 전에 맞잡은 리버라치의 보랏빛 손과 스콧의 하얀 손에서, 마지막 만남에서조차 자신의 추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스콧에게 당부하는 리버라치에게서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모든 퀴어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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