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가족 별장에서 무료한 여름을 보내던 엘리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올리버가 별장에 찾아왔다.
말하는 게 나을까요, 죽는 게 나을까요?
로맨스 소설의 절절한 대사는 소년 엘리오의 마음이기도 하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도, 죽어버리지도 않았지만 자기감정에 솔직할 줄 안다. 그는 올리버의 짧은 바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후 섹스하는 흉내를 내고, 살구의 씨를 발라낸 구멍에 자신의 성기를 넣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올리버에게 조금씩 마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도망가는 “배신자”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집으로부터, 엘리오와의 사랑으로부터, 엘리오로부터 도망간 후 다른 여자와 약혼한다. 엘리오는 사랑에 충실했지만, 올리버는 약혼 사실을 엘리오에게 전화로 통보해 줄 정도로만 엘리오에게 솔직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올리버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 올리버는 자신이 엘리오를 "망쳐 버린 것은 아닐까" 괴로워했고, 스스로에게 솔직했다면 자신을 정신병원에 보낼 아버지가 있으며, 자신의 나이만큼 긴 인생 궤적을 갖고 있다. 올리버는 배신자지만, 비겁한 배신자는 아니다. 올리버의 배신은 변호할 가치가 있다.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렀던, 둘이 완전한 하나를 이룬 그들에게 왜 슬픔과 자책이 남아있어야만 할까. 엘리오에게 새겨진 슬픔과 올리버가 감당해야 할 자책은 이후 두 사람이 살아가고 사랑하는데 어떤 흔적을 남길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명쾌히 대답할 수 없는 음울한 질문들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던지는 영화다.
덧. 영화의 엔딩은 역대급이다. 지독하게 강렬하다. 무엇보다 원작 소설처럼 ‘20년 뒤’ 따위를 운운하지 않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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