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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May 06. 2023

뒷담화/일상의 멀티버스/뮤즈와 팜므파탈에 관한 세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헤어콘테스트 살인사건/Medusa Deluxe

UK/2022/101min/불면의 밤

  헤어 디자이너들이 실력을 겨루는 헤어콘테스트장. 디자이너들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고안한 스타일링을 모델의 머리카락에 펼쳐낸다. 그런데 사건이 터진다. 대회 참가자 중 하나인 모스카라는 남성이 머리 가죽이 벗겨진 채 발견된 것. 대회는 중단되고 행사장에 있던 모든 인물의 건물 출입이 통제당한다. 여러 디자이너와 모델들은 죽은 모스카와 관련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뒷담화’, ‘가십’ 형태로 풀어낸다. 동료이자 라이벌, 친구이자 애인인 이들은 소문, 의심, 질투, 멸시 등의 감정으로 누가 모스카를 죽였는지 추측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모스카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느닷없이 과거의 앙금을 들춰내고,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헤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가진 자부심(혹은 집착)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영화는 주로 행사장 뒤편의 백룸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는 ‘무대 위’와 ‘무대 뒤’라는 구도와 더해져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가지는 ‘날 것’으로서의 생생함을 배가시킨다. 장소적 특성에 유려한 롱테이크로 전개되는 영화 구성이 더해져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생생함이 전해진다. 정작 살인사건의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의 긴장감이 덜하다는 점은 아쉽지만, 전반부의 몰입감과 재미만으로도 즐거운 영화다.          



우리와 상관없이/Regardless of Us

Korea/2023/81min/한국경쟁

  배우 화령은 주연을 맡은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뇌경색을 앓아 부분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겪는다. 하필 영화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다. 그래서 병문안을 온 PD, 감독, 동료 배우들에게 차례로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관점 차이 정도가 아니라 팩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영화의 2부. 여기서는 1부에서 여러 인물이 들려준 상호 모순적인 이야기가 현실로 펼쳐진다. 가출한 것은 화령인가 그녀의 전남편인가? 화령의 자식은 딸인가 아들인가? 멀티버스에서나 가능할 서로 다른 사건과 설정을 천연덕스럽게 연결해 재미를 선사하는 이 영화. 그리고 이내 우리의 삶이 영화가 선사하는 당혹감과 얼마나 다를까 싶은 성찰. 상상력과 야심, 메시지 모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Persona a strange girl

Korea/2023/112min/코리안시네마

  한 극단에 서울대 졸업생 혜리 신입 단원으로 들어온다. 배경과 더불어 연극이 그저 ‘재밌어 보여서’라고 말한 면접 때의 당돌함으로 모든 사람의 관심이 혜리에게 쏠린다. 그러나 이런 관심에 질투를 느끼는 누군가가 있고, 혜리의 ‘화제성’은 곧 ‘가십’으로 변한다. 혜리의 이색적 매력에서 영감과 자극을 받던 연출자 역시 이런 소문에 휩쓸린다. 혜리를 보듬어주는 선배 여성 캐릭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영화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대체로 진부하고 문제적이다. 중년 남성과 젊고 예쁜 ‘팜므파탈’ 여성을 예술가와 뮤즈로만 재현하는 영화라니. 혜리가 연기가 아닌 추문으로만 평가되는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혜리를 내내 ‘이상한 여자’라는 범주에 가둬둔다는 점에서 영화는 실패하고 만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각 영화의 상영시간은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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