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블랙 맘바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루거 국립공원. 2013년 코뿔소 밀렵이 절정에 달하자 여성으로만 구성된 비무장 밀렵 감시 단체 블랙 맘바가 창설된다. 이들의 순찰 및 경계 활동으로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벌어지던 밀렵은 크게 줄었다. 영화 전반부에서 블랙 맘바의 단원들은 독립적이고 강한,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는 블랙 맘바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지층을 서서히 들춘다. 블랙 맘바 단원들은 자기 일에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순찰과 경계만 반복되는 단순한 업무가 주는 무료함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황폐화된 지역 경제를 고려했을 때, 쉽사리 그만둘 수도 없다. 블랙 맘바의 단원들은 혼자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블랙 맘바는 생업이다.
영화는 더 나아간다. 블랙 맘바는 백인 지도부와 흑인 여성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부는 후원을 받아 단체를 운영한다. 블랙 맘바는 아프리카의 밀렵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서구인들이 ‘코뿔소 이슈’로 밀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창설되었다. 즉, 블랙 맘바는 밀렵이 서구인들에게 감정적 호소로 다가갈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블랙 맘바를 비무장 여성 단원으로 구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인 지도부는 자신들이 군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랬다면 “남자를 뽑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지도부에게는 ‘멸종 위기 동물을 지키는 여성’의 이미지가 유발하는 감정적 호소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때문에 블랙 맘바는 “고루한 백인 식민지 시대의 마지막 보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블랙 맘바의 활동에서 멸종 위기종 보호는 대외적 명분에 불과하다. 블랙 맘바는 현지의 흑인에게는 ‘생업’이고, 서구에서 온 백인에게는 ‘사업’이다.
영화에는 블랙 맘바가 지역의 현실과 보다 밀접하게 연계되어 운영되어야 한다는 단원의 주장도 소개된다. 블랙 맘바 단원이 일과 가족을 동시에 돌볼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단체 운영에 외부인이 아닌 마을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이제 코뿔소 이슈 대신 천산갑 이슈로 관심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지도부의 말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지도부에 대한 개별적 비난은 별 의미가 없다. 블랙 맘바 지도부 역시 선민의식의 관심경제, 감정경제의 말단에 자리한 사람일 뿐이다.
사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이슈 파이팅’이 절실한 상황에서 현지 단원들의 요구가 진지하게 고려될 리는 없다. 가족을 지키고 자아실현을 꿈꾸는 여전사 블랙 맘바. 그들은 글로벌 정치‧경제‧문화 역동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곳에 서 있다. 현재로서는, 그들이 꿈꾸는 강렬하되 소모되지 않는 여전사로서의 블랙 맘바는 요원해 보인다.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6월 1일부터 7일까지, 메가박스 성수에서 진행되며 온라인 상영이 병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