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씨앗의 시간〉/〈나무의 숨겨진 삶〉
허리가 한껏 굽은 농부들이 허름하지만 정성스레 포장한 무언가를 손에 쥔 채 밭에 심는다. 이들이 손에 쥔 건 종자회사가 판매하는 상품화된 씨앗이 아닌 토종 씨앗이다. 노인들이 의지와 관성으로 오롯이 지켜낸 작은 씨앗 말이다. 영화는 절기를 따라 토종 씨앗이 땅에 뿌려지고 수확되는 과정을 천천히 좇는다. 노인들은 몸에 새겨진 감각, 다른 작물의 상태, 새 울음소리, 이웃 노인이 전해주는 노하우 등으로 파종과 수확 시기를 가늠한다. 작은 씨앗에는 농부의 삶과 농촌의 공동체 문화가 담겼다. 토종 씨앗을 키우는 농부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면 토종 씨앗의 시간 역시 끝날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의 작고 소박한 자부심이 더한층 소중해지는 이유다. 그리고 딱 그만큼, “토종씨앗과 전통농업으로 생명을 지키고 이웃과 나누려는 사람들이 결성한 한국 최초의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의 활동도 귀하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채집하며, 붙잡는 그들의 활동을 격하게 응원한다.
*토종씨드림 홈페이지(http://www.seedream.org/)
산림 경영 지도원이었던 페터 볼레벤은 금세 일을 그만뒀다. 자기 일에 목재 산업의 관점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나무가 품은 놀라운 생명의 비밀을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썼다. 그가 들려주는 나무들의 우정과 사랑(혹은 번식을 위한 생물학적 전략) 이야기는 경이롭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가 숲을 ‘돌보고’ ‘보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그들을 내버려두며 자연이 오랫동안 해온 자신의 방식으로 해나가도록 두면 된다.
지금은 숲마저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시대다. 이렇게 만들어진 숲은 원래의 숲이 그러하듯 다채로운 생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한다. 페터 볼레벤은 현재의 숲을 고기가 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다 자기 수명에 훨씬 못 미치게 생명을 마감하는 동물의 처지에 비유한다. 동물과 숲 모두에게, 악역은 인간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최고령 나무는 ‘올드 짓코(Old Tjikko)’라는 별명의 가문비나무다. 올드 짓코의 나이는 무려 1만 살에 달한다고 한다. 나이에 비해 소박한 덩치인 올드 짓코 옆에는 수백 년 된 줄기도 있다. 1만 년 된 나무도 여전히 생명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페터 볼레벤의 말마따나 그가 견뎌내지 못할 것은 인간의 전기톱뿐이다. 우리에게는 ‘나무의 특별한 삶’을 침범할 권리가 없다.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6월 1일부터 7일까지, 메가박스 성수에서 진행되며 온라인 상영이 병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