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Aug 28. 2023

[SWIFF]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주는 감동

〈수라〉(2022), 〈수궁〉(2023)



수라/Sura: A Love Song

황윤/한국/2022/108min/‘지금 여기, 한국 영화’ 세션

마지막 갯벌 ‘수라’의 새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집을 나서는 동필과 그의 아들 승준. 오래전 갯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포기했던 영화감독 윤은 이들을 다시 만나 카메라를 든다. 청춘을 바쳐 말라가는 ‘수라’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도요새, 검은머리갈매기, 흰발농게를 기록해 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만금, 아직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이미 끝난 싸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새만금에서 여전히 머물며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전 새만금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다 단념한 감독은 군산으로 이사 온 후 오랜 시간 새만금을 지켜온 사람들을 마주한다. 물론 ‘새만금은 끝났다’라는 믿음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말라붙은 거대한 모래땅에 촘촘히 박힌, 마찬가지로 말라붙은 무수히 많은 조개껍데기가 증명하듯 말이다. 그러나 새만금 ‘개발’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감독은 그 끝나지 않은 조그마한 곳에서 생명‧생태의 경이로움, 어민의 삶, ‘다른 미래’를 본다.     


  평범히 자기 삶을 꾸리며 시민조사단 일을 병행하는 한 활동가는 “기록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목격한 자의 책임감”을 토로한다. 이 책임감은 주류 사회의 상식과 이해를 거스르기에 종종 버거운 죄의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기도 하다. 아직 매립되지 않은 수라 갯벌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펼쳐내는 영화는 관객을 그 책임감, 죄의식으로 초대한다. 영화 관람을 강력히 권한다. 아이 양육자로서 새만금 갯벌을 어떻게 재현할지 고민했다는 감독의 가족주의적 언어는 관객 개별의 경험과 언어를 밑절미 삼아 더욱 확장되고 다채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의 취소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이 진행 중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촉구 서명 운동 링크       




수궁/Sugung-The Underwater Palace

유수연/한국/2023/92min/‘예술하는 여자들, 외침과 속삭임’ 세션

4대 국창 가문의 마지막 전수자인 정의진은 동편제 수궁가의 전수자를 찾고 있다. 서편제의 인기에 밀린 동편제 ‘수궁가’를 지키는 길은 2020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가 되는 길뿐이라고 믿는 정의진은 문화재 선정을 위해 4시간이 넘는 완창 공연을 준비한다. 정의진은 많은 제자 중에서도 마땅한 전수자를 찾지 못하지만, 제자들은 소리를 하며 행복하다고 말한다.(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야심'


  판소리 유파는 크게 서편제, 동편제, 중편제로 나뉜다. 그중 중편제는 현재 명맥이 끊겼고 동편제는 서편제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낮다. 국창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동편제를 시작한 정의진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올해로 여든인 그녀는 2020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등재를 목표로 양암 수궁가 완창을 비롯, 10여 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문화재 지정은 수포로 돌아갔다. 몇몇 제자들이 어려운 여건과 변화한 시대상 속에서도 동편제의 명맥을 이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의진의 눈에는 그들의 목청이 어딘가 마뜩잖다.     


  일제 강점기에 기생 양성소인 권번 제도가 확립된 이후, 소리꾼들은 판소리가 천민, 기생의 노래라는 이유로 천대받아 왔다. 의진 역시 수십 년간 자신이 소리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동편제 양암 수궁가 전수에 그토록 목매는 것일까? 영화에서도, GV에서도 명쾌한 대답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녀 자신조차 명쾌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동편제에 대한 의진의 애착과 사명은 깊다. GV에서 그녀가 좌절하지 않는 야심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야심은 사라져가는 동편제와는 그리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결합은 기묘한 생명력을 뿜는다. 그 소멸적 운명이 이미 결정된 듯 보이는 대상을 향한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적 결의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 이 결의에서 효율성과 획일화에 반하는 저항의 토대를 벼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