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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30. 2020

왜 가난한 여자는 죽는가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SKY 캐슬〉, 영화 〈기생충〉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2016), 〈SKY 캐슬〉(2018)과 영화 〈기생충〉(2019)은 모두 파국으로 끝나는 가난한 자들의 욕망을 다룬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모든 서사의 핵심에는 상승하고자 하는 가난한 자들의 욕망이 있다. 하지만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 〈SKY 캐슬〉의 김혜나는 죽는다. 〈기생충〉의 기정도 죽는다. 왜 항상 가난한 사람의 욕망은 죽음으로 단죄될까?


  그들이 계급의 선을 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 종식을 고한 자본주의는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계급 간 경계는 점차 단단해져 쉬이 뚫을 수 없는 것, 즉 '신분'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타파했던 신분제가 더욱 교묘하게 되돌아온 것이다.


  자본주의적 신분제는 전통적 신분제보다 더 나쁘다. 여전히 계급 상승이 가능하다고 거짓말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신분제는 신분이 본질적이며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라 말했다. 때문에 낮은 계급 사람들은 애초에 신분상승을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신분제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강변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문제는 드물게나마 발생하는 신분상승이 ‘공정한 노력’의 결과물인 경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공정한 노력’이라는 이상이 불공정한 현실을 가린다는 것이다.


  공고해진 자본주의적 신분제는 그에 맞는 감정 구조를 생산한다. 높은 계급 사람들은 낮은 계급 사람들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그래서 질투, 분노를 동반한 낮은 계급 사람들의 상승 욕망에 불쾌와 불안을 느낀다.


  〈품위있는 그녀〉, 〈SKY 캐슬〉, 〈기생충〉에서 계급의 선을 넘은 자들이 죽는 이유다. 서로를 경멸하는 자와 질투하는 자가 만났을 때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충돌 이후 항상 가난한 사람이 죽는다는 점, 죽는 자들이 거의 언제나 여자라는 점은 부당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가난한 여자의 죽음’은 교묘한 장치인 동시에 현실적인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중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중으로 소외된 존재다. 이중으로 소외된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강한 상승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극의 자연스러운 추동력이 확보된다. 비참한 자일수록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력할 것이기에. 가난한 여자의 '과한' 욕망은 그들의 죽음을 쉽게 정당화시키는 기재가 되기도 한다. '저 여자 욕심이 과했어', '과한 욕심은 파멸로 끝나는구나'와 같이 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신분제는 가장 낮은 자의 상승 욕망조차 문제적 욕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서 질문해야 할 것은 ‘가난한 여자의 죽음’ 이후다. 드라마와 영화는 결국 가난한 여자가 등장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거나(〈품위있는 그녀〉), 적당히 계몽되거나(〈SKY 캐슬〉), 아버지와 아들의 공고한 유대(〈기생충〉)로 돌아간다. 가난한 여자는 죽었지만 그를 이중으로 소외시킨 질서는 무엇하나 개선되지 않는다.


  가난한 여자의 죽음은 극적 쾌락으로 소비됨으로써 자본주의적 신분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데 활용된 후, 버려진다. 물론 앞의 작품들이 도무지 걷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비극 바깥을 사유하게끔 하는 급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신분제의 욕망 지형이 변하지 않는 한, 가난한 여자의 죽음은 변화의 가능성보다는 극적 쾌락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강력한 비극마저도 소비 가능한 쾌락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위대함’일지도 모른다. 〈품위있는 그녀〉, 〈SKY 캐슬〉, 〈기생충〉은 수많은 시청자와 관객을 확보했지만 박복자·김혜나·기정의 죽음은 소비되었을 뿐, 아직 제대로 추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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