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고독의 오후〉, 〈아니말〉
알베르 세라/France, Portugal, Spain/2024/126min/DCP/Color/Documentary/15세 이상 관람가/Korean Premiere/‘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
시놉시스
〈고독의 오후〉는 현역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초상으로, 전통에 대한 존중과 미학적인 도전으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황소를 맞서는 투우사의 내밀한 경험을 되돌아보게 한다.
▶기예技藝로서의 투우
〈고독의 오후〉는 강렬한 이미지로 생을 건 대결의 긴장감이 들끓는 영화다.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잘생긴 젊은 남성이다. 투우 경기를 마친 그는 땀과 피로 얼룩진 옷을 입은 채 거친 숨을 가다듬는다. 그러면 매니저들이 ‘오늘 최고였다, 너는 최고의 투우사다, 정말 대단했다’ 등의 북돋는 말을 계속해서 말한다. 다음 날, 안드레스는 다시 경건한 태도로 또 다른 화려한 경기복을 입고 투우장으로 향한다. 머리와 가슴 위에 여러 번 성호를 긋고 경기장으로 들어간다. 잔뜩 흥분한 거대한 검은 소가 그에게 달려들고, 안드레스와 소는 문자 그대로 진이 빠지는 잔혹한 사투를 이어간다. 경기 후, 경기 준비, 또다시 경기. 카메라는 두 시간 내내 이 반복의 과정만을 비춘다. 관객이 소와 안드레스의 거친 호흡에만 몰입하게끔 만든다. 이 영화적 여정의 끝에서, 투우가 하나의 기예技藝임을 고통스럽게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영화에는 투우가 점차 술 취한 사람들의 흥밋거리, 구경거리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짤막하게 언급되는데, 이 불만은 투우사가 자신의 업을 하나의 기예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투우를, 안드레스를 낭만화할 생각이 없다. 이 영화는 투우를 옹호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주제는 생과 사를 건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을 관장하는 기예의 규칙 그 자체다. 영화에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는 소의 고통에 관한 이미지, 최종적으로 투쟁에서 패배해 생을 마감한 후 말馬에게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가는 이미지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동물권 옹호자뿐 아니라 생명에 아주 사소한 연민이라도 품을 수 있는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할 장면들이다. 그리하여, 관객은 이 영화에서 투우에 ‘찬성’하는 이미지와 ‘반대’하는 이미지를 모두 마음껏 길어낼 수 있다. 〈고독의 오후〉는 투우의 심연으로의 영화적 초대다.
에마 베네스탕/France, Belgium, Saudi Arabia/2024/101min/DCP/Color/Fiction/12세 이상 관람가/Asian Premiere/‘불면의 밤’ 섹션
시놉시스
전통적인 황소 경주로 유명한 지역인 프랑스 카마르그에서는 인간과 짐승 사이의 날렵함과 상호 존중이 숨 막히는 장관을 이룬다. 이 남성 중심 세계에서, 스물두 살 네지마가 매년 열리는 권위 있는 대회에서 우승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끈질기게 훈련에 매진한다. 그러나 제멋대로인 사나운 황소가 탈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두려움이 지역 사회를 휘감고, 네지마가 일궈온 모든 것이 위협받는다.
▶여성과 동물의 신체적 포개짐으로 가능해지는 저항
순전히 우연이지만, 〈아니말〉은 〈고독의 오후〉가 그려낸 투우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을 촉발한다. 〈고독의 오후〉의 주인공이 투우사 안드레스였다면, 〈아니말〉의 주인공은 ‘소’다. 여성 투우 선수를 꿈꾸는 네지마는 가족과 동료의 반대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술에 취한 밤, 네지마의 꿈이 무너진다. 그날 이후 네지마의 몸에는 알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된다. 그녀의 몸이 조금씩 소의 몸으로 변해간다. 〈고독의 오후〉에서 소는 어떻게든 죽을 운명인 생명체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소는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진 생명체다. 깜깜한 밤, 안갯속에서 인간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소는 인간에게 공포를 준다. 그리고 네지마가 술에 취한 날 밤 그녀와 함께 있던 동료 남성 투우사들이 소의 공격으로 하나둘씩 사망해가면서, 소의 신비한 힘은 폭력의 희생자인 여성(네지마)이 남성 권력에 반기를 드는 소수자의 힘으로 변환된다.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는 소수자와 변신을 연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티탄〉(2021), 〈호랑이 소녀〉(2023) 등의 작품과 나란히 놓았다. 흥미로운 해석이다. 이 해석을 취한다면, 최근 개봉한 〈애니멀 킹덤〉 같은 작품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말〉이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인간의 놀잇감이 된 소가 하나의 신체로 포개져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저항하는 희생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에 관한 장르인 셈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