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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문명에 관한 묵직한 영화적 사유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저항의 기록〉, 〈검은 소〉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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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기록/Resistance Reels

알레한드로 알바라도 호다르, 콘차 바르케로 아르테스/Portugal, Spain/2024/99min/DCP/Color/B&W/Documentary/12세 이상 관람가/International Premiere/‘국제경쟁’ 섹션


시놉시스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의 유일한 연출작 <로시오>(1980)는 민주주의 초창기 법적 검열의 대상이 된 후 많은 이들에게 저주를 받은 다큐멘터리다. 베르가는 그 이후 다른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우리는 이 실현되지 못한 영화들이 저항의 몸짓으로서 현재에서 생명을 얻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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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이어가는 저항의 의지


스페인 감독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의 유일한 연출작 〈로시오〉(1980)는 1980년대 스페인에서 검열에 걸린 유일한 영화였다. 프랑코 독재 정권이 자행한 알몬테 학살 사건을 다른 다큐멘터리였다. 검열로 상영본은 압수되었고, 페르난도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아 포르투갈로 떠났다. 그리고 여러 작품을 구상하다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항의 기록〉을 연출한 두 감독은 페르난도가 구상했으나 현실화하지 못한 여러 자료를 갈무리해 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어가고자 한 결과물이다. 망명한 페르난도가 남긴 메모들을 계승, 재해석해 영화로 만든 것이다. “민중 속에서 영화를 독학한 체제 밖의 감독”이 여러 영역에서 지배 세력의 독점을 고발하고자 구상한 영화적 아이디어를 갈무리하며, 두 감독은 ‘반란자’의 의지를 잇고자 한다.




검은 소/Black Ox

쓰타 데쓰이치로/Japan, Taiwan, United States/2024/114min/DCP/Color/B&W/Fiction/전체관람가/Korean Premiere/‘월드시네마’ 섹션


시놉시스

<검은 소>는 서구화가 진행 중이던 메이지 시대 일본의 한 남자의 삶을 따라간다. 한때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을 이어 나가던 그는 농부가, 그리고 '일본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의 신들과의 연결과 자신의 영성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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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순환에 관한 운치 있는 수묵화


〈검은 소〉는 어느 산사람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을 인상적인 일본 경관의 스케일에 버무린 영화다. 문명화 과정에서 산이 불타고, 산에 살던 남자는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의 한 노파가 남자를 거두어주는데, 이는 호의라기보다는 잇속에 기댄 행위인 듯 보인다. 노동, 성性의 측면에서 노파는 남자를 닦달하듯 착취한다. 그러던 중 노파가 사망하고 남자가 노파의 집과 땅을 상속한다. 그러나 정주의 공포 때문이었을까? 남자는 도망치듯 집을 떠난다. 그러다 검은 소를 만나 다시 죽은 노파의 집으로 되돌아온다. 검은 소를 매개로 남자는 조금씩 마을 활동에 연계되고 그에 따라 소에 대한 그의 애정도 점차 커진다. 그러나 소가 마을 일을 하다 죽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남자는 늙는다. 저 멀리서 화산이 폭발한다. 그 건너편 섬에는 어린 소들이 평화로이 땅을 거닐고 있다. 이렇게 ‘문명화’의 한 국면이 마무리된다. 문명과 순환에 관한 운치 있는 수묵화 같은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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