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광란자〉(1980)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이 왜 광란자인지는 모르겠다. 원제 ‘Cruising’은 게이들이 공적 장소에서 성적 대상을 모색하거나 성적 실천을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인데, 어떻게 고민해도 ‘광란자’라는 번역의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부정적 의미의 초월 번역이다.
이 영화는 땀이 흐르는 헐벗은 백인 남성의 육체 이미지로 가득하다. 게이인 이들은 대체로 술을 마시며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다. 클럽은 온갖 성적 하위문화 실천으로 가득하다. SM 페티시를 다룬 영화는 많이 봤지만, 피스팅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는 이 ‘퇴폐’의 향연이 불쾌할 것이다. 어느 비리 경찰이 회고하듯 게이 클럽이 잔뜩 모인 이곳은 한때 어린이들이 공놀이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게이, 남창이 득시글거리는 곳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타락’에 불만인 것만은 아니다. 단속과 처벌을 빌미로 남성 성노동자에게 ‘접대’를 받기도 하니까. 나는 도덕의 타락에 혀를 차면서도 뒤로는 그 단물을 즐기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드슨강에 토막 난 시체가 떠오른다. 이후 게이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경찰 스티브(알 파치노)가 잠입 수사를 시작한다. 피해자는 모두 비슷한 외모를 지녔는데 스티브 역시 그들과 닮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브가 미끼로 던져진 셈이다. 스티브는 게이 클럽에서 조금씩 그들의 하위문화와 은밀한 신호를 학습한다. 흥미로운 건 스티브가 게이 하위문화에 익숙해질수록 그가 느끼는 혼란도 커진다는 점이다. 정점은 ‘경찰 코스튬 데이’다. 모두가 경찰 복장을 하고 또 다른 남자를 유혹하는 어느 게이 클럽에서, 스티브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에 휩싸인다. 클럽 손님과 스티브가 공유하는 기표로 인해 그가 확고하다 믿은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스티브가 수사를 진척할수록 이성 연인과 멀어지는 것은 중의적이다. 스티브는 자신이 ‘더러워져서’ 이성 연인을 멀리하는 걸까, 아니면 은밀하게 깨달은 동성애적 취향으로 흔들리고 있는 걸까?
결국 스티브는 범인을 검거한다. 범인은 억압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려 인정 욕구에 사로잡힌 남자로, 무정자증인 대학원생이다. 범인의 캐릭터 설정이 재미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결핍감에 동성애자가 되었다는 점은 동성애 성향을 인간의 ‘결함’으로 보는 자들이 종종 언급하는 명제다. 무정자증은 생물학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퀴어에 대한 조롱이 담긴 설정이다. 그러니까, 게이 연쇄 살인마는 게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모두 응축된 인물이다. 그런 그의 분노가 자신을 모욕하는 이성애 규범이 아닌 다른 게이들을 향하는 건 아이러니다.
범인을 검거한 스티브는 형사로 승진한다. 그리고 멀리하던 이성 연인에게 다시 돌아가 다정하게 군다. 퇴폐와 타락, 게이 하위문화와 그들을 향한 편견. 이 모든 것들이 뒤엉킨 곳에서 스티브는 혼란을 느끼다 가까스로 ‘정상’의 세계에 복귀한다. 이 영화의 덕목은 스티븐의 복귀를 가소롭게 보이도록 한다는 데 있다. 스티브는 죽었다 깨나도 자신이 보고 경험한 생생한 게이 하위문화의 역동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할 것이기에. 2007년 칸영화제 특별상영작,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 추천작.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