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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이 마침내 도착한 곳에 관한 영화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y rewr



배뱀배뱀뱀뱀파이어/Babanba Banban Vampire

하마사키 신지 | Japan | 2025 | 105min | Korean Premiere | 12+ | ‘메리 고 라운드’ 섹션



▶뱀파이어 욕망과 게이 욕망이 포개질 때


450살 먹은 뱀파이어 모리는 동정童貞의 냄새를 맡는다. 18세까지 동정을 지키지 않은 남자아이의 피 맛이 끝내준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가 일하는 목욕탕집 주인네 아들이자 밝고 순수한 매력의 리히토의 동정을 지키기는 데 안달복달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리히토가 같은 학교의 이성 아오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오이의 오빠이자 마찬가지로 동정인 프랑켄은 모리의 강함을 추종한다. 게다가 아오이가 하필이면 모리에게 사랑에 빠지며 리히토가 다시금 그녀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며 사태는 점점 복잡해진다. 여기에 모리에게 물리고 싶은 뱀파이어 헌터와 수백 년 전 모리와 함께 모신 주군 노부나가가 자신이 아닌 모리를 택했다는 질투에 휩쓸린 또 다른 뱀파이어까지……. ‘먹잇감’의 순결을 지키기 위한 모리의 사투가 독특하게 발랄하며 유쾌한 BL 장르의 문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끝내 리히토가 오히려 위기에 몰린 모리를 구해주며 ‘포식자-먹잇감’의 관계가 ‘우정과 사랑’의 관계로 포개진다.


영화는 뱀파이어 욕망과 동성애 욕망을 노골적으로 포갠다. 모리는 유독 동정의 남자아이(리히토, 프랑켄)에게만 끌린다. 모리는 동정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아오이가 동정인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녀가 리히토와 섹스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만 혈안이다. 한편 그를 죽이러 온 또 다른 뱀파이어의 원한 역시 동성인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퀴어 욕망의 좌절에서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리의 게이 욕망과 뱀파이어 욕망은 모두 무언가를 상대의 신체에 삽입해야 한다. 성기 혹은 이빨, 감염 혹은 영생. 이 영화는 엇갈린 사랑과 욕망의 작대기 사이에서, 게이/뱀파이어 욕망이 서로 닮아 있고, 정치적 함의 역시 포개진다는 점을 보인다. 원작인 BL의 장르 문법과 매력이 흥미로운 정치적 함의와 맞닿는 신박한 영화.




광장/The Square

김보솔 | Korea | 2025 | 73min | Asian Premiere | 12+ |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섹션



▶독립 애니메이션의 성취, 요근래 최고의 드라마!


한국계 스웨덴인인 보리는 평양에서 대사관의 서기관으로 일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복주. 북한 여성이다.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간다. 노란 머리로 어딜 가나 시선을 끌고, 경계의 눈초리를 받는 보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복주에게 애정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영화 초반, 이 애달픈 외로움의 정서(북한에서의 외로움, 복주를 완전히 품에 안지 못하는 외로움)를 풀어내는 장면들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한편, 보리의 통역으로 일하는 명준은 두 사람을 몰래 관찰하며 상부에 보고한다. 명준은 〈타인의 삶〉의 비즐러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을 감시하지만, 감시 대상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화되어 자신이 속한 체제의 규칙을 위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출국 날짜가 다가오자 보리는 어떻게든 복주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자 하고, 정보 당국은 이를 철저하게 막는다. 그러나 명준은 이 두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허용하고 싶다. 설령 그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경력이 망가지고 평양에서 추방될지라도. 미래가 불가능한 연인에게 단 한 번의 마지막 인사를 허용하기 위해 자기 생의 모든 가능성을 거는 남자의 동기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보리‧복주의 외로움과 간절함, 그리고 그들에게서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외로움을 위로받은 명준의 섬세하고 세밀한 감정선의 연장에서 봤을 때는 그렇지 않다. 세 주인공이 자주 조우하며 엇갈리는 광장이 군집의 공간인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 외로움의 공간일 수도 있다는 통찰 역시 인상적이다. 〈러브 인 클라우즈〉, 〈얼라이드〉 등과 같은 첩보 로맨스의 애절한 감정선과 〈타인의 삶〉과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고루 갖춘, 대단한 완성도의 작품이다.




어글리 시스터/The Ugly Stepsister

에밀리 블리치펠트 | Norway, Sweden, Poland, Denmark | 2025 | 110min | Asian Premiere | 19+ | ‘부천 초이스: 장편’ 섹션



▶의붓자매의 보디 호러로 재구성한 신데렐라 판타지


신데렐라만 왕자와의 판타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신데렐라의 의붓자매 역시 그랬다. 엘비라는 무도회 소식을 듣자마자 꿈에 부풀고, 여성과 남성이 무엇을 교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독한 현실감을 가진 잔혹한 코디네이터 어머니의 지도하에 몸과 예절을 교정한다. 엘비라는 콧대를 높이기 위해 쇠막대기를 내리찍고, 속눈썹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살갗을 뚫는 바느질을 하고, 살을 빠지게 하는 기생충을 먹는다. 엘비라의 신체는 점차 그녀의 치장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례를 치르지 않아 벌레가 꼬인 의붓아버지의 시체, 마부랑 붙어먹다 하녀로 강등된 신데렐라가 손질한 고깃덩어리와 같은 계열에 놓인다. 그녀 몸에 가해지는 잔혹한 교정은 썩어가는 시체와 손질된 고기가 마주한 운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왕자가 판타지의 주인공으로는 영 별로인 사람이라는 점이다. 예쁜 엉덩이를 까고 숲속에서 오줌을 갈기다 엘비라를 처음 마주한 왕자는 그녀에게 구강성교를 시키라는 친구들의 제안에도 그녀의 교정 중인 ‘못생긴’ 얼굴을 보고 치를 떨며 거절한다. 그는 신분만 고귀할 뿐 형편없는 남자다. 그러나 판타지의 상대가 엉망일지라도 엘비라는 멈출 수가 없다. 애초에 그녀의 미모는 신분과 돈으로만 호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비라는 무도회에서 왕자의 마음을 빼앗은 신데렐라의 구두를 신기 위해 자기 발을 절단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러나 결국 왕자의 품에 안긴 건 신데렐라다. 어머니는 엘비라가 기회를 놓쳤다며 모욕할 뿐이다. 그리고 알마. 엘비라의 동생인 그녀는 조용히 엘비라를 말에 태우고 집과 어머니를 떠난다. 남성의 재력과 여성의 외모를 교환하는 체제에서 여성 몸에 가해지는 폭력의 실상을 목격하고는, 그 바깥으로 탈출하며 기존 세계의 가장 비참한 패잔병을 동반하는 것이다. 눈 똑바로 뜨고 보기 힘든 잔인한 장면이 참 많은 영화이자, 신데렐라 이야기를 의붓자매의 보디 호러로 재구성한 상상력과 문제의식이 빛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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