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 그리고 둘〉
삼촌의 결혼식으로 시작해,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는 삶과 영화의 의미를 2000년대 대만의 한 가족을 무대로 가만히 펼쳐낸다.
삼촌은 길일을 택해 결혼하지만 그의 생은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다. 그는 매번 이번 투자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리라 믿으며 주변에서 돈을 꾸지만 그 기대는 항상 좌절된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운으로 자기 삶의 난국을 돌파해내기가 어렵다는 자각이 든 순간 자살을 시도하고, 그마저도 실패한다.
엄마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어머니를 돌보다 오열한다. 어머니에게 들려줄 자기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엄마는 집을 떠나 절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결국 다시 돌아온다. 삶의 의미 없음은 집에서나 절에서나 마찬가지다. 삶의 공허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 방문’ 형식으로 집에 방문한 뒤 아빠에게 돈을 받고 떠나는 스님의 모습에서, 엄마의 공허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다시금 명확해진다.
아빠는 삼촌의 결혼식에서 수십 년 만에 옛사랑을 만난다. 그녀는 오래전 자신을 버리고 간 아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아빠가 비즈니스 차 방문한 일본에도 동행한다. 그러나 이혼 후 아빠에게 오겠다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적극적 구애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 현재 삶을 버릴 수 없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듯하다. 여기에 더해, 아빠는 일본 거래처 직원의 진정성과 그가 선보이는 비전에 진심으로 감응하지만, 돌연 회사가 그 거래를 취소해버리자 깊은 허탈감을 느낀다.
딸 팅팅은 할머니가 쓰러진 데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이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 친구 리리의 애인에게 사랑을 느낀 후 연인이 되어 죄책감은 깊어진다. 그러나 팅팅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남자는 다시 리리에게 돌아가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리리의 선생님은 리리의 어머니와 정사를 맺는 관계다. 팅팅은 이 모든 게 혼란스럽다.
아들 양양. 남자아이 양양은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선물받는다. 아빠는 양양에게 카메라는 서로 다른 걸 보고, 서로가 보는 걸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로가 놓친 걸 보여줄 수 있는 도구라고 설명해준다. 양양은 아버지의 선물 의도에 충실하게 카메라를 사용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은 모기 사진은 그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사진에 모기는 보이지 않고 복도와 벽면만 보인다(남은 반쪽의 진실을 포착하기의 어려움). 그리고 그걸 본 선생님은 양양을 비웃고 혼낸다(그 진실을 남에게 설득하기의 어려움). 그러나 양양은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후 인화된 그의 사진엔 주변인의 뒤통수 사진만이 가득하다.
양양의 카메라는 이 영화의 감독 에드워드 양의 카메라와 같은 일을 한다. 즉 앞만 보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삶의 남은 절반의 진실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일 말이다.
영화 속 인물은 모두 어떤 난국에 갇힌 상태다. 에드워드 양은 카메라로 우리가 놓칠 수밖에 없는 삶의 다면성을 담아낸다. 나아가 여기에 한 인간의 양면성도 함께 담는다. 그러고 나면? 망하고 실패한 듯 보이는 삶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즉 두 번째 삶이 주어지더라도 지금과 그리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는 감각이 자연스레 깨어난다. 이 감각이 묘하게 희망적이라는 게 이 영화의 재미다. 우리는 모순과 역설에 둘러싸인 채로 안갯속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삶 그 자체라는 점을 알면, 그 여정이 주는 혼란이 조금은 줄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 영화는 그저 인생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삶의 다면성과 양면성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을 넘고, 퍽퍽한 삶을 조금은 더 긍정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굉장히 근사한 답변이 되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