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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un 27. 2021

이광수, '자유연애'로 근대의 시작을 쏘아 올리다

이광수《무정》(문학과지성사,2005)

  1917년에 발표된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의 화두는 근대인으로의 각성이다. 《무정》에서 근대인은 ‘팔자’, ‘인연’과 같은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로 그려진다. 즉, 근대인은 자기만의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남들이 옳지 않다고 하여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이다. 변화의 핵심 계기는 연애다. 《무정》은 사랑을 통해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은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다.


  교사로 일하는 형식에게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영채가 찾아온다. 형식은 어릴 적 연모했던 영채가 다시 나타나 반갑다. 하지만 영채는 감옥에 갇힌 아버지와 오빠들을 뒷바라지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생이 된 상태였다. 형식은 안타까운 사연의 영채를 자신이 품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과 기생이 된 영채에게 느끼는 혐오 사이를 방황한다.


  영채는 이를 알아차리고 절망한다. 모든 걸 정리하고 자살할 생각으로 형식을 떠난다. 그러나 죽으러 가는 길에 또래 여성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영채에게 봉건적 감정에 젖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선 안 됨을 일깨워준다. 병욱을 만난 후 영채는 형식을 향한 자기 마음을 되돌아본다. 그리곤 자신이 진정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믿어온 것뿐이었음을 깨닫는다.


  한편, 형식은 영채를 보내기 전부터 미국 유학을 앞둔 선형에게 영어 개인교습을 해주던 터였다. 그러던 중 선형 부모의 주선으로 그녀와 혼인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선형과 형식 모두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를 헷갈려한다. 이들의 사랑은 계속 시험에 부딪힌다.


  이제 소설의 절정이다. 영채, 병욱, 선형, 형식은 한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다. 이들은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수재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음악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모두 유학을 떠나 실력을 쌓고 훌륭한 인재로 거듭난다. 연애 감정의 엇갈림으로 괴로워하던 남녀가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민족의 일꾼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진정한 연애,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근대적 개인으로 나아갈 기회로 삼았다.


  사랑으로 혼란스러워하던 형식은 “가슴속에 희미한 새 희망과 새 기쁨이 일어남”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에 이름 지을 줄을 모르고 다만 ‘이상하다’ 하고 놀랄 뿐”이다. 근대인의 자격은 이 이상한 감정을 대면하고 자아로 통합시키는 데 있다. 형식과 선형은 서로를 적당히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것이 진정 사랑인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의심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둘의 관계를 완전한 사랑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영채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당연히 형식과 결혼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욱의 오빠에게 호감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다. 하지만 이 낯섦은 자기 운명을 형식에게 예속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자원이 된다.

  영채, 형식, 선형이 유학을 떠나기 전 자기감정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는 소설의 전개는 연애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연애는 근대적 개인 됨의 핵심이다. 여전히 봉건적 사랑관이 지배하는 사회, 여성의 정절을 목숨과 동일시하는 사회, 남성과 여성이 사랑할 때 짊어져야 할 무게가 다른 사회일지라도 자유연애의 이상은 그 모든 현실적 질곡에 맞서 절대적으로 사수되어야 할 무언가다. 그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고,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자기감정도 모른 채 남들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가는 삶은 ‘생명’이 없는 죽은 삶이다.*


  이것이 이광수가 인식한 근대의 가능성이다. 그는 봉건적 질곡을 넘어설 힘을 개인의 내밀한 감정에서 찾았다. 사랑에 심장이 뛰어야 민족, 사회를 위한 ‘더 큰 일’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정》에서 등장인물의 내면이 질릴 정도로 흔들리고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무한한 혼란에서 모든 가능성이 피어난다고, 이광수는 생각했다.



*이광수는 1932년에 쓴 《흙》에서 신성한 연애가 퇴폐적 문화로 전락했음을 탄식한다. 하지만 이런 탄식은 그가 《흙》을 쓸 때까지도 자유연애를 신성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언가의 타락을 슬퍼하는 것은 타락 이전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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