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교수님한테 개겨보았다.

학문에 의문을 갖는 것이 대학생의 자세라고 들었다.

by 정상연

한의과대학은 교수님과 학생 간의 위계질서가 엄청 심하다.

영화 신세계나 드라마 야인시대처럼

약육강식의 논리가 고스란히 돋보이는 곳이 바로 한의과대학이다.


가젤 같은 약자는 당연히 학생이다.

교수님은 학점이라는 무기로 학생들을 조련한다.

만약 학생들이 마음에 안 들면 F학점을 주고서 해당 학생이 1년 유급을 받도록 한다.


한의과대학의 학사 일정은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어서

한 과목이라도 F학점을 받으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을 못한다.

20개 과목 중 19개 과목에서 A+를 받고 1개 과목에서 F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치면,

그는 다음해에 F를 받았던 한 과목만 재수강하고서 통과되면 그 이듬해에서야 학년이 올라간다.


고자질을 하나 해보자면,

어떤 교수님은 1학기 본인의 강의 평가가 낮게 나오자

2학기 때 해당 학년 절반에게 F학점을 때리셨다.

연말에 크리스마스도 반납한 학생들이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가 울고빌며 석고대죄를 해야했다.

항복 선언과 재발 방지를 약속한 후에야 교수님은 F학점을 철회해주셨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반기를 드는 그 어떠한 행위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교수님들의 파워를 경험해보고선 장래희망이 한의대 교수로 바뀐 학생들도 몇 있을 정도다.


나도 숨죽이고 대학 생활을 했다.

군대도 다녀와야하고 돈도 빨리 벌어야하는데

6년 안에 졸업을 못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본과 3학년 침구학 수업에서 도저히 참기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해당 교수님께서 맡은 파트가 손에 있는 혈자리였는데,

'수지침' 관련 내용을 알려주셨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원리를 바탕으로 지루하게 피피티를 읽어주셨는데,

손금을 봐주거나 사주를 봐주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과 3학년이나 돼서 이런 강의를 들어야하나싶어 강의 내내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날 내가 무엇에 씌었는지는 모르겠다.

교수님의 목소리만으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교수님, 지금 이 내용이 증명되었거나 연구가 되고는 있나요? 이 내용들의 근거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제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죠?"


나는 F학점을 각오하고 질문했다.

'내돈 내고 받는 수업인데, 정말 의문이 생기면 이 정도 질문을 할 수 있잖아?'

그렇게 나는 용기를 내어 교수님 강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교수님의 답변은 예상 못할 정도로 허무했다.

"글쎄요."

그리고서 그대로 강의를 이어나가셨다.


그 사건은 나의 남은 대학시절을 송두리째 바꿔준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교수님 말씀이나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의문이 되는 부분은 직접 논문을 찾거나 실제 임상을 하시는 한의사분들을 통해 해결했다.


이러한 태도는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식이나 기술은 절대로 남이 떠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을 갖고 찾아보아야 비로소 조금의 발전이라도 가능하다.


다시 본과 3학년 그 수업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손을 들고 교수님께 질문을 할 것이다.

다만 그때는 나뿐만 아니라 옆자리 학우들도 멍청한 이론에서 함께 헤어나올 수 있도록

더 예리한 질문을 던져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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