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를 떠나며....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14)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14. 광저우를 떠나며....


사진) 공항 통관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는데, 광저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공항 통관대에 여권 같은 주머니 속 소지품을 올려놓은 것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 날짜가 2010년 11월이니 아시안게임 관련 출장 당시 찍힌 사진인데 투숙했던 건국(建國)호텔 이름이 쓰인 카드, 여권을 다시 보니 오래전 그 시절에 봤던 광저우 모습들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기도 다.



생소하기만 했던 땅 베이징에 도착해서 주재 근무를 시작한 지 채 1년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광저우에 문제가 생겼으니 광저우로 출장 가라는 지시를 갑자기 받았다. 그것도 출장 기간이 무려 반년 간이나 되는 그런 출장이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애당초 발령을 받았던 베이징도 아닌 광저우라는 중국 남방의 도시에서 반년이라는 결코 짧지만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얼떨결에 광저우에 와 보니 같은 중국이지만 광저우는 베이징과는 너무도 달랐다. 무엇보다도 뿌연 먼지 속에 떠 있는 '회색도시'라는 표현이 너무 어울리는 도시가 베이징이었다면, 광저우는 한마디로 울창한 아열대 나무로 뒤덮인 '초록도시'란 표현이 적합한 녹음이 짙은 도시였다. 광저우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쳤던 그 짙푸른 녹음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유난히도 메마르고 삭막한 베이징에 거주하다 와서 아마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광저우에서 거주한 기간은 2005년 말에서 2006년까지 약 반년이었다. 긴 시간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인간이 이 땅에서 100년을 산다고 가정해도 반년이 200번만 지나고 나면 100년의 수명이 다한다는 의미이니 인간에게 허락된 인생 시간에서 반년이라는 그 시간이 결코 짧다고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수명이 늘어나 백세 시대라 하지만 100살까지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귀한 반년을 광저우라는 중국의 남부 도시에서 소비했다. 그리고 Paris, Toronto, Beijing 등 이미 거주했던 다른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도시 광저우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느끼고 또 겪었다.

하지만 광저우 이전 과거의 기억이 그랬던 것처럼 반년 차곡차곡 쌓였던 광저우에서의 그런 아련한 기억들도 역시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제는 많이 잊히고 퇴색됐다. 그럼에도 오래된 흑백영화 속 희미한 잔상처럼 눈에 어른거리는 그런 그립고 아쉬운 기억들도 아직은 많이 남아있다.


허공을 가득 채운 아열대 도시의 뜨거운 태양,

뜨거운 태양을 만끽하며 자라는 나무들,

울창한 가로수가 만들어내던 그늘들,

백운공항(白云机场) 가는 고속도로 위 나른한 햇살,

오래전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낡은 시골집들,

귀가하면 나를 반겨주던 호텔 방의 쾨쾨한 냄새,

출근길에 마주치던 사람들, 아름다운 여인들,

광저우 군구(廣州軍區) 군인들,

높낮이가 심해 노래처럼 들리던 광둥어(廣東語),

안마소 푸위엔탕의 서늘한 공기, 너무도 시원한 안마,

한국식당과 그곳에서 일하는 순박한 종업원들,

법인의 직원들의 미소,

그리고 또....


체류해야 하는 기간이 짧지 않은 6개월이었지만 어찌 됐든 출장자 신분으로 광저우에서 근무하다 보니 베이징의 집은 처분할 수가 없었고 광저우 체류 반년은 광저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애 처음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두 집에 대한 느낌도 묘했던 것 같다


베이징 갔다가 광저우로 돌아오면 광저우 호텔방이 고향집 같았고, 또 광저우에 있다가 베이징에 가면 이제는 반대로 베이징 아파트가 고향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과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 더 고향처럼 느껴졌겠지만 가족이 없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한동안 비웠다 돌아가는 두 집 모두 고향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시멘트 같은 물질로만 이루어진 베이징과 광저우의 두 빈집도 내게는 고향집처럼 느껴지고 나름 정이 붙게 될 정도였으니,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가족이 함께 머물렀던 기억이 온통 스며 있는 고향집은 과연 얼마나 큰 애착과 애정으로 다가올지 새삼 이해되는 것 같기도 .


그래서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이셨던 아버님도 살아생전에 그렇게도 북한의 고향땅을 그리워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과 형제분들과 함께했던 유년시절 기억이 남아 있는 그 고향, 하지만 결국 고향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아버님께는 그것이 너무도 아픈 회한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 북한 접경도시인 중국 단동에 가셔서 압록강 너머 있는 북한군 초소 군인들에게 멀리서 인사하고 돌아오신 것이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고향 땅 평안북도를 보고 오신 기억이다. 비록 멀리에서나마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렇게라도 꼭 한번 고향 땅을 다시 보고 싶으셔서 그렇게 중국에까지 가셨던 것이었다.


광저우의 내 집, 엄밀히 말하면 주거형 호텔방을 떠난 지도 이제 올해로 14년이 지났다. 그 14년간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나 또한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를 열심히 하며 그 소중하고 귀한 인생의 시간소비해왔다.


그런데 14년 전 내가 거주했던 도시 그 광저우도 내 소중한 인생의 6개월을 보낸 그리운 고향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비록 가족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위로와, 감상과, 회한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겨준 남방 도시 광저우 말이다....


아래 사진은 과거 그 시절 내 눈이 목격했던 광저우에서의 인생의 순간들이다.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과거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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