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의 '798 예술구'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17)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17. 2006년 5월의 '798 예술구'


'중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들은 공산당, 일당독재, 통제, 감시, 억압, 침략 등 솔직히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물론 중국 최고 수준의 문화재가 다수 소장되어 있는 대만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찬란한 중국 고대 예술품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문화나 예술이란 단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혹 떠오르더라도 공산화 이전의 고대 시대로만 국한된 것으로 연상된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에 공산화 이후의 중국에도 그런 부정적인 들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력과 색다른 예술적 에너지도 역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체험할 수 있었다.


베이징 도심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동북쪽의 왕징(望京) 방향으로 가다 보면 따샨쯔(大山子)라 불리는 지역이 나타난다. 베이징에서 내가 다니던 교회가 바로 이 지역에 있었는데, 이 교회에서 100미터도 되지 않은 곳에 이제는 한국에도 꽤 알려질 만큼 유명해진 '798 예술구'란 이름의 예술 작품 전시 공간이 있었다.


2006년 초여름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실 사전에 어떤 정보를 갖고 의도적으로 찾아간 곳은 아니었고 바로 옆에 있던 교회에서 예배 보고 걸어서 집으로 가다가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집으로 가다가 보니 좀 특이해 보이는 동네가 보여 더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798 예술구였던 것이다.


사진) 2006년 5월 798 예술구 모습.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요일인 휴일임에도 요즘과 달리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처음 이 예술구로 들어서는 순간, '어! 내가 지금 유럽에 와 있나? 중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 공간은 색다른 공간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색다르고 또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었음에도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마치 멋진 예술품들이 전시된 거대한 연극 무대 위를 오로지 나 홀로만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한 그처럼 인적이 없으니 너무도 적막하고 조용해서 작품 감상에 더욱 집중하게 되기도 했다.


예술구는 유럽의 어느 전시 공간을 보는 것처럼 첫눈에 보기에는 서구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는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니 또 공산화 이후의 중국 분위기도 역시 분명하게 느껴지는 매우 묘한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서구와 중국의 두 가지 요소가 묘하게 혼합된 것에 공산주의 이념까지 더해진 그런 독특한 느낌의 예술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현재 이렇게 아름다운 798 예술구는 사실 원래부터 예술구로 조성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과는 반대의 개념이 되는 원자탄과 같은 대량살상 무기 부품을 생산하던 군수품 공장 단지였다.


'798'이라는 숫자도 중국의 수많은 군수 공장들에 붙여진 공장 번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군수 공장들이 점차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 단지에 빈 공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2005년 중국 정부는 이 단지의 재개발을 위해 이 지역에 있던 모든 건물들을 철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동화된 한적한 공장지대의 저렴한 임대료에 끌려 이곳으로 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의 수가 서서히 늘어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장 주변에 전시하는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람객도 역시 늘어나기 시작하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중국 정부는 기존의 철거 계획을 철회하고, 올림픽 기간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시설로 이 단지를 육성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인간을 살상하는 군수품을 생산하던 공장 단지였고, 또 곧 철거될 운명이었던 이 공간은 이처럼 우연한 과정을 거쳐서 인간의 삶과 시간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채워주는 예술품이 가득 찬 공간으로 전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이 과거 공장단지였다는 흔적은 지금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건물 안에 있었던 공장 설비들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공장 건물 자체는 현재도 여전히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건물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파이프, 높은 굴뚝, 설비 이동을 위해 기둥 없이 건축한 건물의 넓은 내부 공간 등 과거 공장 흔적들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공장 단지의 건물들을 보면, 건물 자체도 중국의 흔하고 평범한 여타 공장과는 좀 많이 다르게 보였다. 어찌 보면 그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의 건물들은 중국이 아직은 대형 공장 건설 기술이 없었던 1950년대에 같은 공산권 국가인 동독(東獨)의 엔지니어들에 의해 설계됐다고 한다.


(독일인이 설계한 공장 건물들 모습)

https://yourenotfromaroundhere.com/798-art-district-beijing-china/


결국 798 예술구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예술구로 성장하게 된 밑바탕에는 유럽 독일인들도 상당 부분 기여한 셈이다. 아울러 그 외에도 사실 초창기 이곳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 중에는 미국이나 유럽 출신 예술가도 꽤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예술구는 순수 중국인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고, 적지 않은 서구인들의 참여와 기여를 통해서 만들어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서구적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중국적인 요소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 같은 그런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처럼 길고 긴 과정을 거쳐 공산혁명 이후 중국이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1950~60년대 그 시절 이곳에 거주했던 중국인 노동자들의 애환과 가난이 온통 가득했을 이 삭막한 공장 단지는 이제 많은 인간의 시간을 풍요하게 해주는 예술품들이 충만한 그런 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다.




내게도 그랬지만 당시 대부분의 외국인에게 베이징에 대한 인상은 메마르고 먼지만이 가득했던 회색 도시 같은 느낌이 강했다. 실제 베이징은 매우 건조하고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세먼지도 매우 심했다.


하지만 일종의 주관적인 착시현상이겠지만, 이곳에만 오면 유독 강렬하게 느껴지는 태양, 유난히 짙어 보이는 녹색의 나뭇잎, 베이징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것 같은 공기 등, 그 공간 내 모든 것이 삭막한 베이징에서 보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980년대 말 신입사원 시절 완전하게 뒤바뀐 시차 속에서 마치 꿈속에서 다니듯 비몽사몽간에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중남미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나라들을 출장 다녔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예술구에만 오면 마치 그 시절 그 카리브해 섬들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사실 내가 베이징에 주재 근무하면서 체험했었공간들매우 제한적이었다. 거의 매일 같이, 집, 사무실, 식당, 술집 등 군데 정해진 곳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다녔고, 결국 그런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만을 기준으로 중국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예술구를 통해서 그간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의 모습이 결코 중국의 전체 모습이 아니며,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중국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예술구도 2006년 그 시절처럼 조용하고 적막한 분위기에서 사색하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예술구가 매우 널리 알려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되다 보니 면적도 크게 확대됐고 상업시설 역시 크게 늘어났으며, 무엇보다 관람객들이 너무 많이 증가해서 2006년 그 당시에 향유할 수 있었던 그러한 고요함은 안타깝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 이곳에서 경험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798 예술구에서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사실 또 다른 생각이 겹치기도 했다. 798 예술구는 분명히 기존 중국에 대한 인상과는 너무도 다른 매우 아름답고 또 독창적이고 색다르고 개인의 감성과 개성이 맘껏 드러나는 그런 공간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여전히 공산당 1당 독재 하의 국가이고, 그 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자유를 찾고 주장하는 수많은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있으며, 그런 어두운 역사가 현재도 엄연히 진행 중인 국가라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모택동의 지시하에 활동하던 홍위병에 의해 적어도 수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는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 그리고 몇 명이 사망했는지조차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확인조차도 어려운 천안문(天安門) 사건, 분리를 추구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철저하고 끊임없는 탄압 등 변함없이 반복되는 잔혹한 사건들이 너무도 많다.


(문화 대혁명 참상, 05:13)

https://youtu.be/5g4qUMK6Jnc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갑자가 사라진다는 언론 기사도 자주 접하며,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소수민족은 수천 명인지 수만 명인지 그 규모도 파악하기 어려운 수가 정당한 절차 또는 재판도 없이 알 수도 없는 장소에 구금되어 있다고도 한다. 티베트인에 대한 탄압은 이미 전 세계에 익히 알려져 있으며, 위구르인이 거주하는 신장(新疆) 지역에는 백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이 감금되어 있다는 기사도 있다.


(중국의 티베트인 탄압)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555153&memberNo=44372044&vType=VERTICAL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

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5185685?sid=104

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078979?sid=104


언론, 통신, 인터넷 등 거의 모든 Communication 수단은 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장악되어 있으며 신분 확인 없이는 기차도 타지 못하는 곳이 중국이다.


모든 전화 통화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도 수시로 도청될 수 있다는 것은 중국인 대부분도 인지하는 공공연한 사실이고, 중국 정부도 또한 굳이 그것을 부인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런 국가의 수도 베이징 한복판에 그러한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렇게 감성적이고 예술적 감동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어쩌면 그 고통스러운 피의 역사를 스스로 위로받고, 그런 역사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인과 서구인의 마음속 깊은 갈망과 절실함이 자연스럽게 '798 예술구'라는 베이징의 이색 공간을 만드던 것에 응집되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사진) 798 예술구에 있던 작품. 얼굴과 하반신이 없는 채로 공산당원들이 자주 입는 옷만을 묘사한 조각품인데, 저항의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찬양의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좀 혼란스럽다. 분명 작가는 어떤 확고한 뜻을 갖고 만든 작품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의 그 뜻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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