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되던 날의 흐릿한 기억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11)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11. 납치되던 날의 흐릿한 기억


그날도 거래선과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거래선들과 식사하면 대부분 다소 늦은 저녁 10시경까지 식사가 이어지곤 했기 때문에 법인 차와 기사는 그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여느 날처럼 먼저 보내고 나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집 근처의 Wan Chai 역에서 내린 것까지는 기억이 있는데 이후로는 갑자기 기억이 끊겼고, 눈을 떠 보니 어떤 건물 안에 내가 있었는데 병원에서 사용하는 들것 같은 것 위에 누워 있었으며 주변의 사람들 3~4명이 누워있던 나를 어딘가로 급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급하게 가면서도 이따금 나를 내려다보기도 했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그 와중에도 정말로 놀랐던 것은 내가 입고 있던 흰색 셔츠가 피로 보이는 시뻘건 액체로 온통 뒤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또 머리는 빠개지듯이 아팠고 온몸은 무언가로 심하게 맞은 것처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홍콩에서는 납치가 꽤나 흔하다는 사실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홍콩 최고 재벌 이가성의 아들도 납치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재벌이나 재벌 가족을 인질로 잡고 거액을 요구하는 납치 범죄가 홍콩에서는 매우 흔하게 발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실제로는 그저 일개 월급쟁이에 불과했었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홍콩인들이 잘 아는 한국 대기업의 홍콩 법인장이었으니 납치범들이 내가 돈이 꽤 많을 것으로 완전히 잘못 판단해 나를 납치해 가고 있는 것이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홍콩의 납치 사건 사례)

1. http://wednesdayjournal.net/m/content/view.html?section=94&category=97&no=31374

2. http://www.wednesdayjournal.net/m/content/view.html?section=1&no=24890&category=3

3. http://wednesdayjournal.net/m/content/view.html?section=1&no=23243&category=3

4.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9003548?sid=101


그런 사실을 깨우치고 나니, 정신은 아직 온전치 않았지만 극심한 두려움에 나는 들것에서 내려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고, 못 가겠다고 아우성치며 적극적인 저항을 보기도 했었다. 또 납치 사실을 빨리 알리려고 내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그러한 요청을 하자마자 의외로 순순히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었다. 아마도 어차피 납치된 사실을 내 주변에 알려야 돈을 받아 낼 수가 있으니 그렇게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준 것 같았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바로 법인 관리담당에서 전화해서 내가 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이후 또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쑥 눈을 떠 보니 어떤 조용한 병원 침대 위에 내가 누워 있었고 역시 주변에는 3~4 명의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번에 나를 내려다보던 사람들은 좀 전의 상황과는 달리 내가 매우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법인의 주재원과 인사과장 등 홍콩인 직원이었다.


결국 납치범들에게서 이미 풀려난 상황이라는 얘기였는데, 어떻게 내가 그렇게 빨리 납치범들에게서 풀려나 병원까지 오게 되었는지 너무도 궁금해 과정을 주재원에게 물었고 그 주재원으로부터는 참으로 황당한 답을 들었다.




머리는 여전히 빠개지듯이 아팠지만 그 주재원 말을 들으니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실제로는 전날 저녁 내가 납치되었던 것이 전혀 아니고, 술도 평소보다는 다소 많이 마셨던 데다가, 마침 그날 저녁에 비가 꽤 왔던 바람에 Wan Chai 역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졌고, 그때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치면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마침 지나가던 어떤 고마운 홍콩인이 쓰러진 이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보고 한국의 119 같은 곳에 연락해줘서 Wan Chai 역 근처의 병원에서 구급차가 와서 나를 병원으로 이송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비몽사몽 간에 봤던 피에 흠뻑 젖은 내 셔츠는 사실 피에 젖었던 것이 아니라 그날 저녁 거래선과 식사할 때 과하게 마셨던 붉은색 레드 와인을 내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흰색 셔츠에 모두 토해서 그렇게 온통 피에 젖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울러 나를 끌고 가는 것으로 오해했던 사람들은 실제로는 이 병원의 의사들이었는데, 내 온몸이 붉은 피 같은 것으로 온통 젖어 있고 또 내가 정신까지 제대로 차리지 못하니 혹 뇌혈관이 터진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MRI를 찍으려고 데려가는 과정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납치로 착각해서 못 가겠다고 완강히 버텨대니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반강제로 끌고 갔던 것이다.


또 주재원과 인사과장이 상황을 인지하고 병원에까지 오게 된 것은 주재원은 관리담당, 인사과장은 병원으로부터 각각 연락을 받았던 것이었다. 사실 관리담당은 그날은 베이징에 출장 중이었는데, 당황해서 경황이 없었던 내가 그 사실을 잊고 그에게 전화해서 납치됐다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하니 걱정이 돼서 홍콩에 남아있던 다른 주재원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한편 그 사이 병원에서는 옷에 있던 내 명함을 보고 법인 인사과장에게 연락했었다.


한마디로 과음한 상태로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게 되면서 정신을 잃었던 내가 밤새 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던 것이 이 사건의 실질적인 전모였던 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너무도 크게 오해하여 납치됐다고 베이징에까지 전화하고 의사들 앞에서 저항하고 도망가려 했었으니 나도 그렇지만 법인 직원들도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쓰러져 있던 Wan Chai 역 A3 출구 인근 모습)

https://goo.gl/maps/3zZZCCimMrZXRwB19


한편 머리가 너무도 아파 사실 나도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내가 정신을 잃었던 사이에 진행되었던 병원의 MRI 검사 등 각종 검사 결과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으로 나왔다. 실제 하루 자고 나니 다음날 멀쩡했던 것으로 봐서 머리가 그렇게 심하게 아팠던 것은 단순 숙취로 그날 저녁 거래선 회장이 온갖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계속 따라 주어서 여러 종류의 와인을 섞어 먹은 결과 그렇게 아팠던 것 같았다.


아침이 되자 나는 퇴원했으며 병원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서 다시 출근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조차도 단 한 번도 병원에는 입원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러한 황당한 사건으로 생애 처음, 그것도 해외 홍콩에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집 바로 앞에 있었던 병원으로 'Ruttonjee'라는 다소 읽기가 난해한 철자를 가진 이름의 병원이었다. 독특한 이 이름은 이 병원에 거액을 기부했던 어떤 외국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인 1892년 홍콩으로 이주한 외국인으로 'Parsi'라는 명칭으로 통상 불리는 페르시아계 인도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름도 영어식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로 읽기에는 다소 어색했던 것이다.


Parsi라 불리는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오래된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지금도 여전히 신봉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페르시아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후 조로아스터교가 핍박을 받게 되자 이를 피해 인도 등 아시아권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Jehangir Hormusjee Ruttonjee'라는 긴 이름이 의 풀 네임인데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홍콩으로 그는 성장 후 홍콩에서 맥주 공장을 운영해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1943년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폐결핵의 연구 및 치료를 위해 이 병원에 거액의 재산을 기증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서 병원은 그의 이름을 따서 병원의 이름을 정했던 것이었다.


참고로 홍콩에는 과거에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던 시절부터 영국의 군인으로 주둔해왔던 인도인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인도 출신 외국인들이 현재까지도 홍콩에 많이 남아있다.


어쨌든 페르시아에서 출발해 인도를 거쳐 홍콩에까지 오게 된 이 Ruttonjee라는 어떤 고마운 이방인 덕분에 한국에서 온 나 역시도 이 병원 구급차에 의해 구조되고 또 하룻밤 큰 신세를 질 수 있었던 셈이다.

사진) 내가 입원했던 Ruttonjee Hospital (2014. 2월)




결국 다 지나고 보니 일종의 해프닝처럼 일이 싱겁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사실 좀 더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날 너무나도 많은 행운이 따랐기 때문에 밤늦은 시간 그것도 해외의 거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건에도 그렇게 무사할 수 있었지, 만일 당시 그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해프닝이 아니라 매우 큰 사건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첫째, 내가 넘어진 장소가 비교적 치안이 좋은 지역인 Wan Chai 역 근처였다는 것부터 운이 좋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Tsim Sha Tsui나 Sham Shui Po 같은 지역에서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면 아마 지갑 모두 다 털렸을 것이고 아무도 병원에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너무도 고마운 어느 홍콩인이 병원에 나를 연결해 준 것이었다. 홍콩에 거주할 때 대부분의 홍콩인들이 개인적인 것을 넘어 다분히 이기적이기까지 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홍콩인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사실 입장을 바꾸어 서울 어느 전철역 근처에서 밤 10시경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며 걷다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 것을 봤을 때 과연 구급차를 불러줄 사람이 몇이나 될지 자문해 보면 우선 나부터도 그럴 것이라고 확실하게 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홍콩에서 쓰러져 있던 내 주변에는 마침 너무 운 좋게도 구급차를 불러줄 그런 사람이 지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서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면 정신을 잃은 나는 그곳에서 밤새 비를 맞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다음날 어쩌면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인 상태로 발견됐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셋째, 술 취한 사람이 빗길에 미끄러져서 정신까지 잃었을 정도로 심하게 머리에 충격을 받았는데도, 머리 내외부에는 단 한 군데의 내상이나 외상이 없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심지어 머리뿐 아니라 몸 다른 부위에도 심각한 타박상이나 상처가 전혀 없었다. 맨 정신에 넘어졌어도 그렇게 심하게 넘어지면 어딘가 다치거나 심하면 뼈가 상할 수도 있었는데 술 취해서 휘청휘청 걷다가 넘어졌음에도 정말 너무도 운이 좋았다.




그날 술과 함께 식사를 했던 거래선은 홍콩 전자제품 최대 Retail 유통인 B 사였다. 내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간 그날 식사 장면은 아니고 다른 날 찍은 사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래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B사 회장과 임원들이다. 그들과 식사하면 항상 이 사진에 등장하는 이 멤버들이 나왔다.

사진) 홍콩 Retail 유통 B사 임원진들 모습 (2009. 8월)


사진 속에 내가 전달하는 감사패를 받고 있는 사람이 B사의 회장인데,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중국 본토 '정협(政協)' 위원이기도 했던 바로 이분이 와인을 계속 권해서 결국에는 내가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강제로 술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고, 단지 내가 주량 자랑한다고 거절하지 않고서 받아 마셨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홍콩에서는 중국에서와는 달리 거절하면 더 이상 술을 권하는 경우는 다행히 거의 없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특히 오랜 기간 해외에 주재 근무하면서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위태롭고 아찔했던 경험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 그 모든 고비들을 별 탈 없이 무사히 넘기고 이렇게 과거의 그 기억과 추억을 글로 다시 옮겨 적을 수 있는 것도 큰 축복 중 하나인 것 같다.


부족하고,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것들만이 내게는 가득했었다고 환경과 불운을 탓하면서 살아오기도 했던 것 같은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참 감사했던 일들이 이미 내게도 너무나 많이 주어지기도 했었다는 것을 이러한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새삼 깨우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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