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돈암동 살던 어느 가족 (3)

■ 그 시절 주택의 내부 모습 - 2

by SALT

아래 사진은 60년대 돈암동 집에 있던 등나무로 된 의자를 아버님께서 손수 수선하시는 모습이다. 아버님께서 40세쯤 되셨을 때의 사진들인데, 이 사진을 찍은 이후 약 30~40여 년이 지난 2001년에 아버님께서는 76세로 돌아가셨다.


60년대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 고개 넘어서 38-34 번지에 살던 우리 집 마당 모습은 이랬었다.


사진) 다소 희미하긴 하지만 이 등나무 의자는기억에도 남아 있는데 돈암동 살던 시절 내내 마당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마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자주 등장한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버님은 꽤 마른 체질이셨다. 다만 그럼에도 76세까지 사셨으니 1925년에 출생한 세대분들 기준으로는 그다지 짧은 생을 누리셨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 어머님은 금년 2022년 기준으로 92세이신데, 스스로 걸어 다니시며 치매도 전혀 없으시다. 일곱 분이나 계셨던 어머님 형제분들이 한 분만 제외하고는 모두 환갑을 전후로 돌아가셨던 것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다.


참고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놀랍게도 1960년에는 고작 52.4세였고, 1970년에조차도 여전히 63.2세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국인의 수명이 요즘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짧았던 것 같다.


(한국인 평균 수명)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000331/7521641/1


사진) 아버님과 어머님이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 모습.


옷을 입은 상태로는 좀처럼 구분이 안되지만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역시 아버님은 엄청 마르셔서 바로 옆에 계신 어머님보다도 몸무게가 더 적을 것처럼 보인다. 또한 두 분 키도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아버님께서 작으신 것이 아니고 어머님께서 그 세대 분들 중에서는 꽤 크신 편이다. 게다가 양장에 맞는 구두까지 신고 사진을 찍으셨을 테니....


사진) 결혼 전 창경원에서 찍은 사진과 결혼 후 돈암동 살던 시절 창경원 같은 장소에서 다시 찍은 사진.


정확하게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신 것을 보면 결혼 후 창경원의 이 장소에서 다시 사진을 찍기로 두 분간 사전에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동일한 장소에서 두 분이 찍은 사진이지만 결혼 후 사진을 보면 두 분 사이에 어떤 또 다른 한 작은 생명이 서 있는데 바로 누님이다, 하늘이 주신 결혼 축하 선물이며 이 세상 섭리의 결과일 것이다....


사진에는 단기로 연도가 표기되어 있는데 서기로 환산하면 1956년과 1960년이다. 1960년이면 돈암동으로 이사 온 바로 그 해다.


사진) 햇살이 찬란하던 60년대 어느 날 돈암동 집 마당에서 대문을 향해 찍은 사진. 중앙에 보이는 아이가 내 모습이고 오른쪽이 어머님, 왼쪽이 누님이다. 사진에도 좌측에는 아버님께서 수리하시곤 했던 등나무 의자가 보인다.


안타깝지만 사진에 보이는 저 작은 아이 뇌 기억 속에는 이 집 마당 구조가 분명하게 저장되어 있지 못하다. 하지만 집 대문 오른쪽에 앵두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어서 여름에는 그 나무에서 앵두를 따먹곤 했던 기억은 분명히 남아있다.


아버님께서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로 6.25 전쟁 발발 전 서울로 오셔서 연세대를 졸업하신 후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다. 한편 그렇게 공무원으로 한동안 근무하셨지만 아버님께서는 북한의 농사꾼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을 언제나 매우 자랑스러워하셨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무나 화초 같은 식물들을 기르시는 것을 몹시 좋아하셨고 그 덕에 집 마당에 앵두나무도 심어져 있어 간식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집안에서 앵두를 따 먹을 수 있었다.


사진 속 저 집에서 태어났고 이후 용산구 동부 이촌동으로 이사 때까지 유년 시절 10년을 저 집에서 살았다.


사진) 돈암동 집 방 안에서 어머님 품에 안겨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삼 남매.


1962~3년경 사진 같은데 50여 년의 세월 흘러버린 현재 삼 형제 중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는 누님은 조현병 환자가 됐고, 강보에 싸여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는 막내는 10여 년 전 46살 나이에 좀 일찍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이 사진을 찍을 당시는 31~2세였을 어머님은 이제는 92세의 할머님이 되셨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사진)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 누님의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누구인지는 기억이 없다. 우측 사진 오른쪽 끝에 계신 분이 어머님이시다.


우리 가족은 어머님은 서울 이태원, 누님은 서울 필동, 나와 동생은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평안북도에서 태어나신 아버님을 제외하면 모두 고향이 서울이다. 하지만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어머님 고향 이태원은 엄밀히 말하면 어머님께서 태어나신 일제강점기 시절 1931년 기준으로는 행정구역상으로 서울(경성)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듣고 기록을 찾아보니 이태원은 1936년에야 서울(경성)로 편입된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 행정구역 변천사)

https://ko.m.wikipedia.org/wiki/%ED%8C%8C%EC%9D%BC:Seoulprefecturalannexation1914-1995.png


사진) 어머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향 서울을 떠나서 경북 문경 산속에 거주하신다. 이 사진은 약 4년 전 어머님 88세 때 집 방문 시 찍은 사진인데 어머님께서는 늙은 모습이 흉하다고 당신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셔서 말씀드리지 않고 갑자기 핸드폰 들이대고 찍은 사진이다.


2022년 새해 92세가 되신 어머님도 이따금 돈암동 살았던 어머님의 30대 시절을 그리워하시기도 하신다. 아울러 또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인 일제 강점기 시절 소학교(초등학교) 다니던 때도 바로 어제 같은데 어떻게 당신이 벌써 90살이 넘었냐고 말씀하시며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기도 하신다.


내게도 그랬듯이 어머님께도 역시 지나간 그 세월과 인생은 허망하게 흘러간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너무나도 짧고 빠르게 지나가버린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아래 사진이 이제는 백발의 92세 할머님이 되신 어머님 유년 시절 모습이다. 이렇게 작은 어린아이가 위 사진에 보이는 모습과 같은 백발의 할머님으로 변했으니 세월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긴 무섭다. 1930년대 찍은 사진 속 이 어린아이가 세월이 흘러서 언젠가는 자신도 90세가 넘는 할머님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과연 했을지....


사진) 이태원에서 서울 내수동으로 이사 간 후 내수동 집 마당에서 찍은 어머님의 유년 시절 사진.


사진) 아버님께서 돈암동 집 거실에서 누님 안고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누님의 얼굴 인상이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어머님의 유년 시절 얼굴 인상과 너무도 흡사해 좀 소름이 돋는 것 같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이란 결국 그렇게 스스로를 반복해서 복제해 가면서 땅에서 자신의 존재를 연장시켜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거실 깊숙하게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이 왠지 묘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 같은데, 사진 속 누님 나이가 2~3살 정도 되어 보이니 아마도 1960~1년 즈음 사진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흘러 사진 속 아버님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고, 아버님 품에 폭 안겨있는 작은 어린아이는 60대 중반 할머님이 되었다....


사진) 역시 돈암동 집 거실에서 찍은 사진. 누님이 7살이던 1965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제는 할머님이 된 누님에게도 이처럼 어리고 귀엽고 예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을 만큼 새삼스럽고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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