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집에서는 약 10여 년 살았는데 그 집 대문은 그 기간 최소 3번 정도 바뀌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나무로 되어 있었고, 두 번째로 바뀐 문도 역시 나무였지만디자인이 달랐다. 세 번째는 그 사이에그나마 한국이 평균적으로 조금은 더 잘 살게 돼서 그랬는지 철제 대문으로 바뀌어있었다.
사진) 첫 번째 대문 모습. 누님 나이로 볼 때 돈암동 집으로 이사 온 직후인 1961년 즈음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흑백 사진 속에 보이는 마당 가득한 60년대 햇살이 왠지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진) 1963년 두 번째 대문 앞에서 찍은 누님 사진. 이 문 역시 나무로 제작되었지만 첫 번째 대문과는디자인이 많이 다르다.한편 첫 번째 대문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누님은 2~3년 사이 부쩍 성장했다.또 대문과 누님을 가득 비추는 이 사진 속의 햇살역시 요즘 햇살과는 뭔가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사진) 세 번째 철제 대문 모습. 두 번째 대문사진으로부터또다시 2~3년 정도 시간이 더 경과한 1965~6년 경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이 더 성장해서 이제는어느덧 소녀 티가 나기 시작하는 누님이 대문을 살짝 열고 미소를 짓고 있다. 돈암동 집 대문이 변해가는 모습과 함께 우리 가족의 세월도 그렇게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세 번째 대문사진 우측에 보면 요즘은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 '문패'가 걸려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60~70년대 그 시절에는 집 앞 대문 옆에 집주인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거는 것이 많은 서민들의 꿈이었다 하는데 사진 속 문패를 보면 아버님의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그 전 거주지는 모두 월세나 사글세로 전전하셨다는 아버님께서 돈암동 이 집에서 드디어 당신의 이름 석자가 들어간 이 문패를 걸 수 있었을 때 얼마나 뿌듯하셨을지....오래전 추억이 담긴 그 문패를 이제 좀처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불현듯60년대 동네 도처에서 쉽게 보던 그 문패들이 그리워지는것 같다....
사진) 60년대로부터 5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른 후 2014년 찍은 돈암동 같은 집 대문.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철제 대문이지만 훨씬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아울러 최근의 추세처럼 대문 근처 어디에도 문패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진) 우리 집 대문은 아니며, 집 앞 골목길에 있는 다른 집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 1960년대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같은 골목 안에도 우리 집보다 훨씬 멋진 대문을 가진 잘 사는 집들도 간혹 있었다.
지도를 보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큰길이 '동소문로'로 나타나는데 이 길을 중심으로 동쪽은 고지대였고 우리 집이 있는 서쪽은 저지대였다. 그런데 어차피 전반적으로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이긴 했지만 그래도 고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그나마 좀 더 부자인 경우가 많아서 그쪽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 보면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좋아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돈암동 동소문로 최근 거리뷰)
* 최근 거리뷰를 봐도 여전히 거리 한쪽은 고지대, 반대쪽은 저지대인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다만 우리 집이 있던 저지대 쪽에도 간혹 나름 괜찮은 집도 있었는데 우리 집 바로 앞에있던 집도그러한 집이었다. 그 집은 퇴역 장교가살던집이었는데 어쩌다한번 가서 보니 마당이넓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파란 잔디로만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성껏 다듬어진 잔디로꾸며진 마당은 그때 처음으로 봤는데 그집의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잔디는 오래된 60년대 영화 한 장면처럼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한편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그 집 남편은 정말 신사였으며 또 게다가 엄청난 애처가였다고 한다. 부인에 대한 남편의 그런 깊은 사랑이 그저 먹고 살기에도 급급하던 60년대 그 시절에도작은 집 마당을 그토록 정성스럽게 파란 잔디로만 꾸밀 생각을 하게끔한 것은 아니었을지....
사진) 3살쯤 되어 보이는 나이의 누님이 돈암동 집 마당의 우물 근처에서 물장난을 하는 모습. 어머님께서 빨래하시는 모습을 아마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쉽게 보기 어려운 우물과 펌프를 사진으로나마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보니 꽤 반갑다.
올해92세이신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60년대 돈암동 우리 집에는 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물은 언제나 위 사진에 보이는 마당의 우물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60년대에는 서울의 주택에서도 우물물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아래의 기사를 보면 서울의 상수도 보급률이 50%를 넘어서는 시점은 그리 오래지 않은1976년이라고 한다. 70년대 중반까지도 서울 주택의 약 반 정도는 수도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으니 60년대서울의 변두리 돈암동에 있던 우리 집에서 우물물에 생활수를 의지했던 것은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이야 시골에서조차도 집 안으로 상하수도가 연결되어 집안에서 밥하고 설거지 하지만 1960년대 그 춥던 시절에 한겨울 마당의 우물에서 물을 받아 가족들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했을 당시의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이야 남편들도 주방일을 분담해서 하지만 60년대 그 당시에는 주방일은 오로지 어머님들만이 전담하던 시절이었으니....
한편 나는 돈암동 집안에 우물이 있었는지 수도가 있었는지 전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물론 당시 너무 어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거의 모든 것을 어머님께서 알아서 해결해 주시니 그저 받기만 하면 됐던 내 입장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돈암동에 살던 60년대 그 시절 어머님께서 매우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주신 덕분에 우리 삼 남매는 편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사진) 사진에 단기 4293년이라 적혀 있으니 서기 1960년 사진으로 부모님이 돈암동에 막 이사 온 그 해에 창경원에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봐도 당시 어머님들의 고생을 느낄 수 있는데 누님이나 아기용 가방까지도 모두 어머님 쪽에있는 것으로 봐서 외출할 때도 필경 어머님께서 누님을 업고 가방까지도 홀로 들고 다니셨을 것이다. 당시 아버님들은 부엌일, 육아,가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오로지 어머님들만이 이러한 일 모두를독차지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한국 세태가 그렇다 보니 남편들이 아이를 업거나 안고서 거리를 걷는 일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우리가족도 역시 온 가족이 함께 외출하면 아버님께서는 대장처럼항상 홀로 멀리 앞서 가시고 멀찌감치 뒤에서 어머님께서 우리를데리고 따라가셨던 기억이 있다. 요즘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반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사진) 결혼 전 어머님의 세련되고 멋진 모습. 왼쪽의 남성이 아버님이시다.
사진) 결혼 후 돈암동 집 앞 골목에서 찍은 어머님의 초췌한 모습. 누님을 보면서 나까지 업고 찍은 사진인데결혼 전의 사진 속 어머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물론 결혼 전후찍은 위 두 사진 속 인물은동일 인물로모두 어머님이시다. 결혼 후 육아, 가사 전부를 어머님께서 홀로 독차지하시다 보니 어머님의 모습이 이처럼 초췌하게변할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초췌하게 변한 바로 그 모습 덕분에 우리 삼 남매는 한국인 대다수가 가난하던 그 힘든 시절을 무사히헤쳐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이 땅에 사시던 대다수 어머님들 인생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60년대와 달리 이제 남자도 가사와 육아에 같이 동참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은 정말 다행이고 또 당연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