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1960년대 그 당시에는 돈암동에서 성신초등학교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따라서 누님도 이 학교에 입학시키려고꽤 노력했는데 추첨 방식으로 입학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결국 누님이 탈락하여 초등학교 1~2학년은 인근의 다른 학교인매원 초등학교를 다녔고 3학년 때 성신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매원, 성신 이 두 학교는 모두 현재도 운영되는 학교들인데, 아래 사진은 이 학교들의 오래전 과거 1960년대 모습이다. 이 사진 속에 보이는 어린이들은 모두 이제는 최소 환갑이 넘는 나이가 되었고 일부 어르신은 어쩌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매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누님 사진들. 중간에선글라스 쓰신 분은 어머님이시다. 사진 속 너무도 귀엽고 발랄한 저 소녀가 이 사진을 찍은 후 10여 년 뒤에는 조현병 환자가 되어 이후 평생 고생하는 운명으로 살아야 했다. 왜 그런 운명이 하필 저 소녀에게....
아래 매원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보면 이 사진을 찍은 후 약 50여 년의 세월이 경과한 최근에는 비록 같은 공간이지만 이제 누님과는 다른 적어도 50살 정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또 다른 돈암동 어린이들이 매원초등학교란 같은 공간에서 뛰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월과 함께 누님은 60대 중반의 할머님이 됐고, 언젠가는 병들고 쇠약한 노인으로서 이 땅에서 사라지겠지만 누님이 머물렀던 그 공간은 누님의 세월은아랑곳하지 않고 50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 의해이처럼 끊임없이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성신초등학교에서 찍은 누님 사진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이 사진 속 푸릇푸릇한 어린이들 역시 이제는 모두가 60대 중반의 어르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진) 성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던 누님 모습.
나 역시 1학년은 돈암초등학교를 다녔지만 2학년 때 성신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용산 이촌동으로 집이 이사를 가는 3학년 때까지 다녔다. 그렇게 다닌 그 초등학교가 그리워서 10여 년 간의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나이 50살이 넘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로 오랜만에그 학교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아래 사진은 바로 그때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 돈암동에 찾아가서 찍은 성신 초등학교 교정 모습 (2014. 8월)
희미한 기억이지만 60년대 사진 속 교정 왼쪽에 창고 같은 것이 있었고, 겨울에는 당번이 되면 학생 두 명이 그 창고로 가서 조개탄이라고 불렸던 연탄 비슷한 것을 받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 학생들도 겨울에는 난방용 조개탄을스스로 받으러 다녀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검색해보니 마침 과거 그 당시 내가 당번이 되어 조개탄을 나르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 기록된 사이트가 있어서 참고로 링크한다.이 링크 속 사진들을 보니 조개탄 나르던 60년대 그 시절 사진 속 저 성신 초등학교안으로 불현듯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든다. 링크 속 사진처럼 정말로 그렇게 당번 두 명이 힘들게 낑낑대며 조개탄이 든 통을 열심히 날랐다.
사진) 2014. 8월 찍은 돈암 초등학교 모습.60년대에는 이 학교 주변에 아파트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현재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학교 주변은 온통 아파트 숲이다.
돈암 초등학교도 1년간 다녔지만 당시 너무 어려서 그런지2014. 8월 학교 교정을 오랜만에 다시 방문해도 이 학교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가족사진을 보면 돈암 초등학교 1학년이란 이름표가 붙어있는 명찰을 달고 찍은 사진이 있는 바, 내가 이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기억할 수는 있다.
사진) 돈암초등학교 1학년 때 찍은 사진.가슴에 붙어있는 명찰에 돈암이라는 표식이 보인다.이제는 흰머리가 가득한 퇴물이 된 나도 사진 속 저 모습처럼 저렇게 새파랗게 어린 꿈 많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있었다....
바로 이 사진이 그때의 사진인데, 명찰에 1-15라고 표기된 것을 봐서 당시 1학년에는 최소 15개 반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가 한국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그 시절 동시에 돈암 초등학교 한 학교에 다녔던 것이다. 한 학급도 요즘처럼 소수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고 최소한 70~80명은 되었던 것 같다.
한 교실에 학생들이 너무 많아 교실이 '콩나물시루' 같다는 말도 자주 쓰이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격동의 시절을 한때 풍미했던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도 이제는 무대에서 서서히 내려갈 때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우리의 후손 세대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 그것이모두가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 인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