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사라진 자들의 묘지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24)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24. 사르트르와 사라진 자들의 묘지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의외일 수도 있지만, Paris 시내 한복판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총 19개에 달하는 공동묘지가 있다.


(파리 시내 공동묘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0643


서울 시내 강남구, 송파구 같은 곳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데 물론 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의 과거에는 이 지역에도 묘지들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서울로 편입되고 개발되어가면서 그 묘지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을 것이다.


Paris도 서울처럼 점차 외곽으로 도시가 확대되어 오늘과 같은 규모의 대도시가 되었다 한다. 하지만 Paris는 도시가 확대돼도 수천구에 달하는 묘지가 있는 대형 공동묘지들이 그대로 자리에 남아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묘지에 대한 프랑스인의 인식은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인의 인식도 변해가는지 우리 세대가 어렸던 그 시절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간주됐던 망우리에 있는 공동묘지도 이제는 '망우공원'이라고 불리며 산책과 조깅까지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망우리 공원묘지의 진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3149143?sid=102


Paris의 공동묘지들 또한, 실제 방문해 보니 음산한 느낌을 주는 그런 곳은 결코 아니었고, 번잡한 도심의 한 복판에서 잠시 세상사를 잊고 여유와 휴식과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용한 공원이나 녹지 같은 그러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Paris의 공동묘지 중 규모가 크고 유명인이 다수 묻혀 있어 잘 알려진 묘지로는 페르라쉐즈나 몽파르나스 같은 묘지가 있었는데, 프랑스에 도착한 바로 그다음 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묘지들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감수성이 한참 민감하던 그 시절, 프랑스 철학이나 문학이 마치 세상의 모든 진리인 것처럼 느낄 정도로 심취해서 살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 마침내 프랑스 땅을 밟게 되었으니 비록 이미 이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토록 심취했었던 그러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들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 묘지에라도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왜 학창 시절에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에 유독 깊이 빠지게 되었는지 그 계기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일부러 책을 골라 읽은 것도 결코 아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당시 읽었던 대부분의 거의 모두 프랑스 작가 작품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결코 가볼 수 없는, 또 미래에도 역시 가 볼 기회가 영원히 없을 것 같은 먼 나라 작품이니 그저 그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프랑스라는 나라와 그들의 작품 속 세계를 마음속으로만 맘껏 상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스탕달(Stendhal), 모파상(Maupassant), 까뮈(Albert Camus), 사르트르(Sartre), 보들레르(Baudelaire), 지드(André Gide),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생텍쥐페리(Saint-Exupéry) 등등....


그들의 작품에 심취했던 학창 시절로부터는 이미 수십 년의 무수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당시에 읽었던 그 작품들과 그 작품의 작가 이름만 다시 들어도, 컴컴한 좁은 골목길을 방황하는 것 같았던 고민과 번뇌가 가득한 사춘기 시절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다.


특히 사르트르나 까뮈에 의해 대표되는 실존주의에는 한때 너무도 흠뻑 빠져, 대학시절 내내 실존주의는 내게 있어서 하나의 종교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져 있었다.


물론 대학 졸업 후 내 인생은 대학시절에 고민하고 꿈꾸던 것과는 너무도 달리 직장에 취직해 직장 생활 내내 수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며 전자 제품 파는데 눈이 벌게져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마약에 취한 환자처럼 정신없이 살아왔던 그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이제 다시 되돌아보니, 내게도 한때 프랑스 문학과 철학에 빠져서 살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기억난다.




Paris 최대 공동묘지인 '페르라쉐즈'에는, 장미 빛 인생(La vie en rose), 후회하지는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 등 불후의 노래를 남긴 여가수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의 묘지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 쇼팽(Chopin), 이태리 출신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아일랜드 출신 시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등 다양한 국적의 문인들 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 페르라쉐즈)

https://www.hyunee.com/2285


또 다른 Paris 대형 공동묘지 '몽파르나스'에는 보들레르, 모파상,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등 유명 작가의 묘지와, 음악가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대학시절 한때 내게는 종교 집단의 교주와도 같았던 사르트르의 묘지가 있었다.


(사르트르의 묘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A000167693


사르트르는 죽을 때까지 50여 년이나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고 계약결혼 상태로만 살았다는 그의 영원한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함께 Paris 하늘 아래 이 공동묘지 한 구석에 조용히 묻혀 있었다.


이제 이들 모두는 이 세상에서는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혔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그들 모두 한때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안타까운 자신의 삶을 격정적으로 소진하며 한 세상을 풍미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Paris의 아름다운 거리를 걸었듯이 그들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느끼며 우리처럼 Paris의 그 아름다운 거리를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역시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듯이, 그들 또한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좀 더 먼저 태어나 살았으니 그것만큼 우리보다는 조금 먼저 땅에서 사라진 셈이다.


그래도 그들은 평범한 우리들은 쉽게 인지하지도 못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살았으며, 그들이 그렇게 보고 느낀 것들을 감사하게도 그들의 천재적 감각을 통해 작품으로 우리에게 남겨주고 갔다.


다만 그들이 영원하지 않았듯이, 그들의 그 귀한 작품들도 역시 안타깝지만 영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한 때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방황하는 영혼들을 매료시켰던 그 실존주의라는 유명한 철학도 요즘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는 한물간 퇴물처럼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낮이지만 인적도 드물고, 오랜 세월을 버텨온 고목들이 공원묘지 곳곳에 그 큰 가지 아래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한여름 Paris 시내 공동묘지에서, 이제는 말없는 묘비 주인으로만 남아 있는 과거 나의 교주 사르트르를, 바로 눈 앞에서 그렇게라도 만나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젊음의 무게로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의 나를 지배했던 그 위대한 철학자 사르트르결국 시간의 심판은 피해 갈 수 없었고 그렇게 그 무덤 안에 들어가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다 없어지고,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그 컴컴하고 습한 땅속에 묻힌 사르트르의 육신도 이미 모두 삭아서 흔적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상과도 같았던 사르트르를 무덤에서나마 그렇게 만나 후,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의 오래된 거목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 나오면서 잠시 생각했었다. 과연 남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이었는지,


내가 종교처럼 심취했던 한 세대를 지배했던 사르트르와 그의 실존주의가 과연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었었는지....


사진) 프랑스 문학과 철학에 흠뻑 빠져서 살던 고교 및 대학 시절 사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현재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달라 사진 속 저 사람이 정말 나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03:33)

https://youtu.be/GZtxpXxDnlg


이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한때는 이 땅 위에서의 유한하고 아까운 삶의 시간을 함께 다정하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1980년에, 보부아르는 그로부터 약 6 년 뒤 1986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모두 고목의 그늘과 향기가 가득한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예외 없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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