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딱 붙여 잠을 자던 개가 온 얼굴을 핥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에게 아이스 커피를, 동생에게 딸기 라떼를 한잔씩 가져다 주면서 시작한 아침. 별것 아닌 이야기로 깔깔대며 아침을 열었다. 다들 집을 비우고서야 커피를 한잔 들고 책상에 앉았다. 조금은 버티는 마음으로, 오늘따라 유독 하기 싫던 공부를 해냈다.
평소였다면 혼자서는 아까워서 엄두도 못 냈을 점심을 먹었다. 내가 나를 잘 돌보아 주기로 마음 먹은 탓이다. 나에게 맛있는 것 사 주기, 내가 좋아하는 것 해 주기, 내가 싫어하는 건 덜하기, 이로운 건 싫어도 가끔 참고 하게 하기.
점심을 먹고서는 개를 데리고 걸으러 나갔다. 마르지 않은 팔이 싫어서 매 여름마다 미뤘던 나시를 입었다. 위에 셔츠를 걸쳤지만 흘러내린다고 해서 후다닥 추켜올리지 않았다. 나와 잘 살기 위한 한걸음이다.
좋아하지만 비싸서 자주 가지는 않는 카페에 갔다. 우연히 간 거였는데 할인을 하는 날이라서, 2400원에 맛있는 라떼를 먹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행인들이 개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종이 뭐예요?” 믹스예요. 저 질문은 개를 키운 지 꽤 됐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 개가 예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커피를 받고 10보도 가지 못한 지점에서, 개가 확 줄을 잡아당기는 통에 커피를 쏟았다. 나일론 소재의 바지를 입어 다행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이었다.
라일락을 보았다. 사실은 저 꽃의 이름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다. 작년 이맘때쯤 연보라색이 유독 잘 어울리는 친구가, 라일락이다! 외치며 사진 찍던 게 기억났을 뿐이다. 전문가가 붙였을 이름이 아니라 내 추억으로 꽃을 기억하는 것도 꽤 괜찮은 듯하다.
동네 빵집에서 요즘 빠진 빵을 샀다. 이름이 명란 치아바타랬던가? 든든한 기분으로 가방에 두 개를 넣었다. 입에 꼬치 소스를 묻힌 아이들이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한 아이는 이모, 강아지는 뭐 하고 놀아요? 하며 대화를 시도하다 다시 미끄럼틀로 향한다. 여러모로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여름의 길목에서 나는 잘 지냅니다. 다음날 장마가 시작되더라도, 장마가 끝나길 기대하며 그렇게 잘 지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