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중고 카메라를 팔았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구입하신 중형 카메라이다. 일반 카메라 밖에 다뤄본 적 없는 나에게는 '고개를 숙여서 뷰 파인더를 보는 카메라'가 더 쉽게 다가온다. 핵무기 발사버튼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철제 가방을 열면 근 30년 간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 친구가 가지런히 앉아있다.
지난 이사 때도 살아남은 친구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가 세기말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들고 다니기 무겁고 사용하기 어려운 깨끗한 고물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못내 아쉬워하셨지만 이번 이사에는 이 친구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중고나라에 20만원에 올렸더니 2주간 5명 정도가 찔러보기를 하셨다. 가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꽤 의외의 반응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선뜻 구매를 결정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6번째 연락이 온 사람과 거래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핵무기 발사대를 앞에 놓고 10분 여를 기다리니 엣된 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인사를 하고 자유롭게 확인해 보라고 가방을 열어줬다. 이리저리 조작을 하더니 카메라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이 친구이 본 모습이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경쾌한 셔터 소리는 마치 나를 째려보면서 '제가 이렇게 까지 되거든요'하는 느낌이었다.
"융 있으신가요?"
"융으로 닦는 거 조차 해본적 없는 제품입니다. 지금 처음 그걸 여시는 거에요."
학생은 연신 '맘에 든다'를 연발했다. 주인을 만난 듯 했다. 이 친구를 판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셨다.
"당시 100만원 넘게 산 물건이야. 아파트가 2천만 했을 때지. 살기 바빠서 만져 보지도 못했네..."
'살기 바빠서'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관심만 있고 좀 더 부지런했다면 이 친구가 날개를 달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살기 바빠서'에는 이 카메라가 주는 즐거움과 맞바꾼 '책임감'이 더해져있다. 그 조금의 관심과 부지런함은 그렇게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씁쓸함이다.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카메라가 초등학생 때 일쯤 태어난 학생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5만원권 4장을 꺼내 내밀었다.
"입시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차라리 부자 어르신이 본인의 컬렉션으로 사가셨으면 좋았을걸. 차리리 나도 모르게 내 계좌로 이체를 해주지. 차라리 기분 나쁘게 꼬투리라도 잡지. 생각만 이랬다. 주저없이 돈을 챙기며 '잘 쓰세요' 했다. 아버지의 책임감을 할인해줄 수는 없었다. '살기 바빠서' 만져보지 못한 이 친구가 좋은 주인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