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요 며칠 간, 사소한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교통사고를 모면하기도 했고, 제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전북 현대 팀이 패배하는 순간(FA컵 8강전에서 전북 현대는 부천 FC 1995에 2:3으로 패배하였습니다.)을 지켜보았으며, 피부 트러블에 소화불량 같은, 평소라면 잘 걸리지 않는 질환까지 와서 몸이 피곤했습니다. 몸도 머리도 어지럽고 빙글빙글 돌다가 이제야 다시 중심 잡고 글 씁니다.
잡소리가 길었군요. 이제 시작하죠.
최근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 책은 만화「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특하, 인조 편과 효종 편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습니다. 그 편에 나오는 두 문장이 특히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그 자체로 힘이 되지 못한다.
정묘호란을 겪은 조선 조정은 자신들이 '오랑캐'에게 짓밟혔다는 것이 큰 수치이고 굴욕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오랑캐'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습니다. 정확히는 생각만 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수치, 굴욕, 복수심을 느꼈다면 자신들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실질적인 힘을 길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들이 다시 공격해왔을 때 이기지는 못해도 국가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의 권력자들은 복수할 생각만 했지 실질적인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고, 결국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장면을 자초했습니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과 관념에만 빠져있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실책이었는지 다시금 마음에 새겼습니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보다 더욱 길고, 깊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이 이룩해놓은 체제는 허약했고, 대응력은 없었으며, 뻔뻔했다. 그래 놓고도 그들은 과거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에 과거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힘이 약해 금수와도 같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정신만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상당히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수많은 위기를 겪고도 조선은 이른바 소중화 사상에 갇혀 해법 모색과 변화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고, 이 '타이밍 놓침'이 점차 누적되어 망국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쩌면 '타이밍'을 놓치고 과거나, 과거 체제의 안정성에 안주하면서 답을 찾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꼭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에서 위기가 찾아오고 그것을 견디면서 변해야 하는 시기에 변하지 않고 과거에 안주한다면 결국 같은 위기에 더 심하게 무너지게 되지 않을까요? 다른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클리셰 중 하나인 "같은 기술은 두 번 통하지 않아!"처럼 같은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언젠가는 그것이 먹히지 않게 되는 때가 오고, 그때부터는 붕괴의 연속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여튼 두 번째 문장은 복잡합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을 던지죠.